지난 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 심리로 진행된 금융감독원 출신 김 모 전 청와대 행정관(46)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제3자 뇌물수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그는 고개를 떨구고 이같이 말했다. 금감원에서도 우수한 직원들만 파견을 간다는 청와대 행정관까지 지낸 그는 왜 법정에 서게 됐을까.
김 전 행정관은 1조원 이상 투자자 손실을 낸 '라임 사태'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하고 금감원 내부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그가 금감원의 라임 조사 문건을 건넨 인물은 다름 아닌 '라임 전주(錢主)'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46·수감중)이었다.
피고인 신문 내용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향 친구 사이다. 성인이 된 뒤 김 전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술값, 밥값을 계산해주는 '통 큰' 친구였다고 한다. 김 전 행정관은 "봉현이의 사업과 저의 업무에 연관이 없었고, 오래된 친구 사이여서 편하게 계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행정관이 지난해 2월 금감원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후 김 전 회장은 그에게 스타모빌리티 법인카드를 건넸다고 한다. 그는 "청와대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면 피곤하니 택시도 타고 다니고, 아이들 밥도 사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네가 밥 사먹이는데 써라"라며 카드를 줬다고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은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사하을 지역위원장은 김 전 회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더불어민주당 A 의원도 김 전 회장에게 맞춤양복을 선물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 사태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여기저기 뿌린 돈이 엄청나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업을 하던 김 전 회장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보험' 성격의 금품을 여러 사람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행정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김 전 회장은 김 전 행정관의 동생을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키기도 했다. 그는 "인터불스(스타모빌리티 전신) 회사 경영진을 새로 짜며 동생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며 "동생에게 사외이사 자리를 제안해 스스로 잘 생각해서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했다"고 했다. 김 전 행정관의 동생은 지난해 7월 스타모빌리티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김 전 회장이 검은 속내를 드러낸 건 지난해 8월 한 언론 보도에서 라임자산운용과 관련해 펀드 부실 운용 의혹을 제기하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김 전 행정관에게 "라임에서 투자를 받기로 돼있는데 무산되면 회사가 어려움에 처한다. 라임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금감원 조사 내용을 요구했다고 한다.
김 전 행정관은 "금감원의 자료를 보여주는 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 계속 망설였다. 하지만 김봉현이 라임의 직접적 관계자가 아니고 그동안 (그에게) 받았던 것들이 있어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라임 조사 내부 문건은 두 차례에 걸쳐 김 전 회장에게 전달됐다. 김 전 회장은 이 문건을 복사한 뒤 이종필 라임 부사장(42·수감중)에게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언론에서 김 전 회장을 '라임 전주'로 지목하고, 김 전 행정관이 그의 뒷배로 알려지며 그는 검찰에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대형 금융 부실 사태와 관련해 개인적 이익을 위해 내부문서를 유출하기까지 한 것으로 그 사안이 중하다"며 김 전 행정관에 대해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원을 내려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 전 행정관은 최후 변론에서 "공직자로서 지켜야 하는 청렴과 비밀준수 기본 의무를 저버리고 금품과 향응을 받고 내부 자료를 보여준 범행을 저지른 점 진심으로 반성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경계했어야 하는데 안일하고 신중하지 못한 생각으로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날 김 전 행정관의 동생과 어머니도 공판에 참석했다. 그의 어머니는 재판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감정이 북받칠 때면 재판장을 잠시 나갔다 들어오곤 했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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