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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9월1일 ‘장발의 조영남’ 방송분이 편집된 이유는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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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 1970년 9월1일 ‘장발의 조영남’ 방송분이 편집된 이유는

1970년 8월28일 서울 시내에서 ‘히피성 청소년’에 대한 단속이 진행됐습니다.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된 히피 문화가 국내에도 들어오면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국가권력은 이를 퇴폐풍조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섰습니다.

방송·가요계에서 치열한 찬반 논쟁이 있었는데요, TBC TV에서 첫 메스가 가해졌습니다. 5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 실린 ‘TV서 사라지는 장발족’ 기사에서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박정희 정권은 단발령 같은 억압적·폭력적 조치로 예술인들의 전위를 무력화시켰다. 단속에 걸려 노상에서 강제 이발 당하는 장발족들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TBC TV는 ‘쇼쇼쇼’에 장발의 조영남이 나오는 신을 잘라내고 방영했다. KBS TV는 이미 보름전쯤 삭발령이 내려 이번 조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고, MBC TV도 마침 프로 중 장발이 나오는 녹화분이 없어 화를 면했다. 이번 단발령으로 TBC만 부분적인 손질을 했지만 지난 봄엔 당국의 권고로 TBC TV는 ‘원·투·드리·고’, MBC TV는 ‘젊은리듬’이 한창 인기를 얻는 판에 도중하차한 일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 두 프로 모두 사이키델릭 그룹 사운드에 의한 장발족의 고고춤이 등장했기 때문.”

TV 탤런트나 아나운서 중에도 간혹 머리를 기른 경우가 있으나 히피 풍의 장발족은 없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독재 정부의 억압도 모든 이들의 장발에 손을 대진 못한 모양입니다.

“이번 단발령에서 연예인들은 화를 모면, 시내 일부 살롱에선 여전히 장발족이 판을 치고 있다. 서울 시내 일반 무대에서 현재 활약하고 있는 사이키 음악 계열의 그룹 사운드는 30여개. 이들 중 인기 있는 몇몇 그룹들은 살롱과 계약, 장기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살롱이 말하자면 한국 히피들의 본거. 대표적인 곳으로 ‘히·식스’의 명동 C살롱, 한국 최장발의 ‘라스트·찬스’가 있는 S살롱, ‘키보이스’의 소공동 L살롱, ‘미도파즈’의 M고고클럽, ‘굿타임즈’의 1호텔 고고클럽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가장 전위적인 그룹 사운드는 ‘라스트·찬스’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사이키 연주에서 빨래판, 깡통, 세수대야 등을 들고 나와 연주를 했습니다. 이들 사이키 사운드그룹엔 ‘그루피’란 여성 팬들도 딸려 있어 모든 것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사는 단발령에 대한 찬반 분위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방송국의 탤런트실이나 가요계에서나 단발령 찬반 시비는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말할 수 없이 ‘머리털이 연기하느냐’는 주장과 ‘신체 자유의 침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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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범죄처벌법 중 개정법률(1973). 국가기록원 제공


1972년 10월 유신 이후엔 장발을 단속할 법적 근거도 마련되는데요, 1973년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개정 경범죄 처벌법’이 발효됐습니다.

장발 단속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1980년대 들어서입니다. 국가기록원은 홈페이지에서 “1980년 내무부는 ‘장발단속이 청소년들의 자율정신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단속중지를 지시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경범죄처벌법에서 장발 단속 근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88년이었습니다. “1988년에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하면서 ‘남·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긴 머리를 함으로써 좋은 풍속을 해친 남자 또는 점잖지 못한 옷차림을 하거나 장식물을 달고 다님으로서 좋은 풍속을 해친 사람’을 경범죄의 종류에서 뺌으로써 장발이나 미니스커트에 대한 단속 관련 규정도 삭제되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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