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평화의 소녀상 도로점용 허가 승인
일본 총영사, 구청장에 “승인 취소하라” 요구
최형욱 구청장 “승인은 적법절차, 취소 안돼”
제74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 14일 오후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기념 부산 44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소녀상에서 노동자상까지 손피켓 잇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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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인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 4년 만에 합법화되자 부산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이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 동구는 지난달 17일 시민단체(겨레하나)가 신청한 평화의 소녀상 도로점용 허가 신청을 최근 승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소녀상은 부산 동구에 있는 일본 총영사 후문 쪽 중앙대로 변에 설치돼 있다. 그동안 인도에 설치됐으나 시민단체가 점용료를 내지 않아 사실상 불법 설치물이었다.
하지만 동구 측은 지난달 15일 부산시의회가 ‘부산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켜 소녀상의 도로 점용료를 면제해주자 도로 점용을 승인했다. 앞서 소녀상을 설치한 시민단체는 도로 점용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11시께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박정희'라고 적힌 노란색 천과 염주, 빨간 주머니가 걸린 나무막대기가 놓여 있는 것을 시민단체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 시민행동'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연합뉴스] |
오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과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시민단체의 도로 점용 허가 신청을 관할 구청이 승인하면서 소녀상이 합법화된 것이다. 2016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며 시민단체가 일본 영사관 주변에 소녀상을 설치한 지 4년 만이다.
이에 지난 6일 마루야마 코헤이 주부산 일본국 총영사는 최형욱 동구청장을 만나 허가취소를 요구했다. 총영사는 이날 “위안부상(소녀상의 일본식 표현) 도로점용 허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러 왔다”며 “동구청에서 시민단체의 점용 허가 요청을 수용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우며, 이는 위안부상의 합법화 고정화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외국 영사관계에 관한 ‘빈 조약’에 전면 위배되며, 한일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에 취소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빈 협약 제22조는 ‘각국 정부는 외국공관의 안녕을 방해하거나 품위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할 특별한 책무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인근에 설치된 부산 평화의 소녀상. 송봉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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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최 구청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도로 점용을 승인한 만큼 허가를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베 규탄 부산시민 행동’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는 일본 총영사의 요구가 ‘내정간섭’이라고 규정하고, 11일 오후 1시 일본영사관 후문 앞에서 일본 총영사를 규탄하는 부산 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시민단체는 “소녀상은 시민의 힘으로 만든 것이고 국내법에 따라 도로점용을 승인한 것이라 취소를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는 입장이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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