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 참사가 발생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7일(현지시간) 시위진압 경찰이 수십년간 권력을 장악한 정치 엘리트층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가스를 발사하고 있다. 베이루트|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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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8일(현지시간) ‘항구 폭발 참사’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 수천명이 군·경과 충돌하면서 1명이 숨지고 238명이 다쳤다. 하산 디아브 총리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제안했지만, 일부 시위대는 30년 넘게 이어온 종파 정치 체제 폐지를 요구했다.
시민 5000여명은 이날 베이루트 도심의 순교자광장에 모여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데일리스타 등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시위대는 이날을 ‘복수의 토요일’로 정하고 지난 4일 창고 폭발 참사로 숨진 158명을 추모한 뒤 “정권은 물러가라. 당신들은 모두 살인자”라고 적은 팻말 등을 들고 행진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우리는 우리 정부에 의해 폭격당했다”고 말했다.
군·경이 광장에 인력을 집중 배치한 틈을 타 일부 퇴역군인들은 외교부 청사를 약 3시간 동안 점거하고 미셸 아운 대통령 초상화를 불태웠다. 에너지부, 경제부, 환경부 건물을 급습하거나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시위대도 있었다. 이들은 레바논 제1정당인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초상화가 그려진 판지 조각을 올가미에 매다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군·경은 최루탄과 고무총으로 진압했다. 피투성이의 시위 참가자들이 구급차로 실려 갔다. 경찰관 1명도 시위대와 대치하던 중 호텔 건물에서 떨어져서 숨졌다. 레바논 적십자는 시위대와 경찰 238명이 다쳤고, 이들 중 63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일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보관됐던 위험물질인 질산암모늄이 폭발해 60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시민들은 지난 6년간 창고에 위험물질인 질산암모늄을 몰래 보관하고도 아무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부의 과실과 무모함에 분노하고 있다고 데일리스타는 지적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수십 년간 이어진 부패와 붕괴 직전에 놓인 경제 상황이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레바논 화폐 가치는 지난 10개월 새 80% 폭락했고, 시민들은 잦은 정전으로 고통받아왔다. 실업률은 40%까지 치솟았고, 인구 45%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사상 처음으로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긴급 구제금융 협상까지 들어간 바 있다.
하산 디아브 총리는 이날 TV 연설에서 “오는 10일에 의회 선거를 조기에 치르자고 정부에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구조개혁 법안들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두 달간 한시적으로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디아브 총리는 지난해부터 잇따른 반정부 시위 여파로 정권이 교체돼 지난 1월 취임했지만,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앞서 기독교계 정당 카타이브당 소속 국회의원 3명 등 총 5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다종교 국가인 레바논은 1989년 협정에 따라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는 독특한 정치구조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이슬람 인구가 늘어나면서 종파 안배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종파 정치 폐지를 요구했다. 시위에 참가한 샤르벨(25)은 “모든 시스템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가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이 다시 열린다면 2018년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한 이슬람 시아파 정당인 헤즈볼라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폭발 사고 희생자도 늘어나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 폭발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158명이고 부상자가 60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60여명은 실종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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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폭발 참사를 당한 레바논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 시내에 진출해 수십년간 권력을 장악한 정치 엘리트층을 규탄하고 있다. 베이루트|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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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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