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삽화. 중국을 상징하는 시추기가 데이터를 채굴하고 있다. [FT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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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용의 머리를 한 시추기가 보인다. 중국 오성홍기가 박힌 이 시추기가 뽑아내는 건 석유가 아닌 ‘0’과 ‘1’로 구성된 숫자, 즉 디지털 데이터다. 반면 미국을 상징하는 듯 바다 건너 땅에는 전통 방식의 석유 시추기만 덩그렇다.
5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이 삽화는 중국의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총력전을 표현했다. FT의 아시아 경제 담당 디렉터 레오 루이스의 칼럼 ‘중국이 데이터 채굴에선 훨씬 더 앞섰다’에 덧붙은 삽화다.
루이스는 이 칼럼에서 미ㆍ중 신(新) 냉전 시대의 입구에서 장기적으론 중국이 유리하다고 전망한다. 중국이 가진 핵심 병기가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화웨이ㆍ틱톡 등 중국 앱을 금지한 이유 역시 개인정보 등 데이터 수호다. 가히 ‘데이터 패권 전쟁’이라 할만하다.
틱톡 등 중국 앱을 다운받고, 개인정보를 등록해 계정을 열고 활동을 하면 데이터가 쌓인다. 이 데이터 중 미국의 국가 안보에 연결된 정보를 중국 당국이 입수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우려다. 중국 국내법에 따라 모든 중국 기업은 당국이 요구할 경우 기업의 정보를 넘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중국 앱 사용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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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백악관부터 재무부ㆍ국무부 등 정부 부처까지 전방위로 중국 앱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미국 기업은 틱톡과 위챗 등 중국 앱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런 앱은 중국 공산당의 콘텐트 검열을 위한 수단이며 미국인의 개인정보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강조했다.
틱톡 사태뿐 아니라 FT 루이스 디렉터가 특히 주목한 건 미국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 폐쇄 조치였다. 당국 대 기업이 아닌, 미국 정부 대 중국 정부가 맞붙은 본격적인 신냉전의 서막으로 비쳐서다.
루이스 디렉터는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 정황을 잘 아는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이 실제로 휴스턴을 통해 데이터 절도(larceny)를 했다고 한다”라며 “데이터가 ‘케이서스 벨리(casus belliㆍ전쟁을 시작하며 내세우는 이유)’ 역할을 한 셈”이라고 짚었다.
중국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지난 3월 베이징의 한 연구소에서 안면인식 기술을 연구하는 모습. 중국의 해당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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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이어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다(Data is the new oil)’이라는 말 역시 강조했다. 이 말은 영국 수학자인 클라이브 험비가 2006년 처음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당시에 이 말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렇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루이스는 '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라는 이 말을 2020년에는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데이터는 오히려 석유보다 힘이 셀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쓰면 소모되고, 저장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석유와 달리, 데이터는 불멸에 가깝고 저장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최근 들어 해외 학계에선 “데이터는 석유가 아니라 (그보다 더 강력한) 핵에너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한 무단횡단 적발 시스템이 도입됐다. 무단횡단 행인을 폐쇄회로(CC)TV로 촬영한 뒤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신원을 특정하는 시스템이다. 이어 주변 정류장의 전광판에 위반 사범 사진을 띄워 위반사실과 함께 조사에 임하도록 통지한다. [중국 인터넷매체 펑파이망 캡처=연합뉴스] |
현재 판세로는 중국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다. 개인정보 축적에 있어 중국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더 쉬운 체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집단지도 체제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이미 절대적 권력을 누리는 중국에선 이미 데이터 축적을 통한 안면 인식 기술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2017년 안면 인식 기능을 통해 무단횡단 벌금을 자동으로 매기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빅데이터를 이용한 정보 활용에 있어 중국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루이스 디렉터는 “데이터를 다루는 중국 당국의 태도와 서구 기업의 태도에는 실제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라며 “중국 기업들은 (데이터를 둘러싼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중국 기업 때리기에도 버티면 이길 수 있다는 게 중국 기업의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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