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디지털 통화 발행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7월 17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경제재정운영·개혁 기본방침 2020’에 디지털 통화 관련 각국과 연계한다는 내용까지 포함시켰다. 일본은행에 이어 정부도 디지털 통화 검토를 공식화한 셈이다. 정부 입장이 중요한 것은 디지털 통화 발행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재무성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통화 패권전쟁에 가세했다. <매경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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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디지털 위안화 추진에 위기감 고조
일본은행은 지난 1월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영국,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중앙은행, 국제결제은행(BIS)과 관련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2월에는 자체 연구팀을 꾸렸고 7월 초 첫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일본은행이 디지털 통화 검토에 나선 데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에 대한 대응 성격이 강하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때까지 디지털 위안화 발행 목표를 세워놓고 실증까지 진행 중이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은행의 위기감은 크지 않았다. 디지털 위안화가 기축통화를 위협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었던 때문이다. BI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가 간 통화 거래에서 달러 비중은 88%. 뒤를 이어 유로와 엔이 각각 32%와 17%를 차지했다. 위안화 비중은 4% 정도로 8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감염 위험성이 있는 접촉을 피하는 언택트(untact)가 기본이 되면서 전자결제 수요가 급증했다. 현금 왕국으로 악명 높은 일본에서 전자결제 비중이 급증했을 정도다. 관련 수요가 늘면서 디지털 통화 도입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반적인 온라인 상거래는 현재 나와 있는 민간 결제 서비스로 가능하지만 국가 간 거래 등 대규모 거래를 위해서는 디지털 통화가 필요하다. 주요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통화 발행에 속도를 내지 않을 경우 디지털 위안화가 선발주자의 이점을 최대한 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번 주도권을 뺏기면 회복에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일본을 비롯해 미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 발행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 통화 발행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또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전자결제가 뒤늦게 도입된 일본에서는 현재 다양한 업체가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혈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많이 활용되는 서비스만 해도 JR동일본의 스이카(교통카드·결제 서비스)를 비롯해 라인페이, 페이페이(야후재팬), 에디(라쿠텐), iD(NTT도코모)를 비롯해 수십여 종에 달한다. 난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서비스가 경쟁하다 보니 관련 사업으로 적자만 커지는 꼴이다. 일본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합종연횡을 유도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본의 경우 디지털 통화 현실화까지 넘어야 할 관문도 적지 않다. 여전히 스마트폰 보급률이 68% 수준(2018년 기준)에 머물러 있고 관련 인프라도 중국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 일본은행에서는 7월 초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전파, 전원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을 것과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을 디지털 통화 조건으로 내걸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9호 (2020.07.29~08.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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