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와 기나긴 싸움 승소에도 따가운 시선
직장 복귀도 불이익도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
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회적 고발인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대한민국 사회에 등장한 지 2년여.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정치, 사회, 문화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용기 있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숨죽여 온 이들이 마침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큰 변화였다. 미투의 사회적 반향과 의의에 그동안 많은 이들이 주목한 이유다. 하지만 정작 미투 참여자들이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다. 그들의 용기가 우리 사회에 일으킨 반향만큼, 사회도 미투 이후 그들의 삶을 보듬어줬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미투 피해자들은 폭로와 고발 이후 어쩌면 더욱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세계일보는 이들이 겪는 2차 가해와 고발 이후의 삶, 지난한 법정 공방의 현실 등을 5회에 걸쳐 들여다봤다.
A4용지 서너장을 빼곡히 채운 손글씨에는 분연한 의지마저 담겨 있었다. 지난 수년의 투쟁기는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경험이었다. 문장으로 정리해 놓지 않으면 사건을 설명하면서 종종 감정이 격해져 빠뜨리는 내용이 생기곤 했다. 메모한 것을 보고 또 보면서 인터뷰를 열심히 준비한 것은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과 자신의 경험, 회복을 위해 싸워 온 이야기 등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31일 취재팀이 만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 한모씨는 사건 이후 멈춰버린 삶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발과 투쟁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잘못한 사람은 물러나고, 피해자는 문제없이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법인 대표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가해자와의 싸움은 고통, 그 자체였다. 가해자는 적당히 합의하고 물러나지 않는 한씨에게 괘씸하다는 듯 가혹한 보복을 시작했다. 사무실 출입을 막고 컴퓨터를 압수하더니 불합리한 인사 조치와 업무 떠넘김, 동료를 동원한 CCTV 감시까지 조직적 괴롭힘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가해자의 역고소와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한씨의 승리로 끝났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에 그는 또 한 번 낙담했다. 집행유예 처벌이 내려진 뒤, 이사회의 비호를 받은 가해자는 여전히 조직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지켰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이후 피해자가 겪게 되는 다양한 2차 피해와 불이익은 미투 참여자의 삶을 심각하게 뒤흔들고 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가해자는 불사신처럼 살아남는데,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회복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미투에 동참하고, 당당히 사회에 복귀하려 노력 중이었다. 그럼에도 “없었던 일처럼 잊고 숨어 살고 싶은 마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란스럽다”고 고백했다. 고민 끝에 공익을 위한 용기를 낼 때마다 2차 가해는 쏟아졌고, 세상은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에 맞닥뜨렸다고도 호소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정지혜·박지원·배민영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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