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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수돗물 유충 사태

인천 수돗물 유충 원인에…"고도 정수처리 시설 운영 미숙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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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서구 검암동 한 빌라에 공급된 수돗물에서 지난 13일 오후 발견된 유충. 연합뉴스


인천 시내 일부 지역에 공급되는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된 것은 해당 정수장에서 고도 정수처리 시설을 미숙하게 운영한 탓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수돗물 수질 개선을 위해 새로운 시설을 추가 도입했지만, 운영 경험이 부족해 오히려 문제를 낳았다는 것이다.

인천 서구 왕길동·원당동·당하동 등 공촌정수장에서 수돗물이 공급되는 지역에서는 지난 9일부터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왔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이들 지역은 지난해 5월 붉은 수돗물이 발생해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후 20일까지도 인천 지역 외에 서울과 경기도, 부산 등지에서도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왔다는 신고가 계속되면서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가 원인 조사와 전국 정수장 긴급점검을 지시했다.

이에 앞서 환경부 관계자와 상수도 전문가들은 지난 17일부터 공촌정수장 등을 방문해 현장 조사 등을 진행 중이다.



"오존처리 없는 활성탄 여과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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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수돗물에서 유충이 잇따라 발견된 가운데 16일 오후 인천시 서구 공촌정수사업소 입구 전광판에 수질기준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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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조사를 진행한 전문가들은 공촌정수장의 분말 활성탄 여과지(池)가 원인일 것으로 일단 추정하고 있다.

또, 서울·경기도 등 다른 지역의 경우는 정수장이 아닌 가정집 저수조나 배수지 등에서 발생한 문제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활성탄 여과지는 고도 정수처리 시설의 하나로 응집·침전과 모래 여과를 거치고, 오존으로 소독·산화한 뒤에 거치는 정수 공정이다.

분말 활성탄으로 물에 남아있는 미량의 유기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활성탄 여과지는 일반적으로 오존 살균시설과 함께 가동되는데,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고가 발생하면서 지난해 9월 여과지부터 서둘러 가동을 시작했다.

공촌정수장의 오존처리시설은 내년 6월 완공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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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 처리 공정도. 일반적인 정수처리 공정(위)에 오존과 활성탄 여과지를 추가해서 고도 정수처리하게 되는데(가운데), 공촌정수장의 경우 오존 없이 활성탄 여과지만 가동했다(아래). 이번에 유충이 발견되자 정수장에서는 활성탄 여과지를 거치지 않고 일반 정수처리공정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료: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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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오존 소독이 없이 분말 활성탄 여과장치만 가동하는 바람에 깔따구가 활성탄 여과지에 알을 낳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활성탄 자체도 오염물질을 제거하지만, 활성탄 표면에 자라는 미생물도 물속 유기물을 흡수·제거한다.

이 미생물 덩어리가 깔따구 유충의 먹이가 될 수 있다.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독고석 교수는 "오존을 가동하면 강한 오존 냄새 때문에 여과지 등을 덮어두게 돼 깔따구가 들어가서 알을 낳을 수 없는 조건이 된다"며 "공촌정수장의 경우 활성탄 여과지가 실내에 있지만, 위쪽이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활성탄 역세척 주기도 너무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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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시 등 일부 지자체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됨에 따라 20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상수도사업소 용인정수장에서 관계자들이 안전한 수돗물을 위해 여과지 활성탄 검체 채취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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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활성탄 여과지에 쌓인 오염물질을 씻어내기 위해 물을 반대로 흘려보내는 역(逆)세척 주기도 10일 정도로 너무 길었다.

깔따구가 알을 낳으면 2~7일이면 유충으로 부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수장에서는 활성탄 여과지 뒤에 다시 모래 여과를 한 번 더 하는 경우도 있지만, 공촌정수장에서는 모래 여과시설이 없었다.

또, 마지막에 염소로 한 번 더 소독하지만, 유충을 죽일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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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따구의 일생(Life Cycle). 알에서 2~7일이면 유충으로 부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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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 교수는 "염소 소독은 기본적으로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이는 목적"이라며 "유충을 죽일 정도로 염소 농도를 높인다면 사람에게도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알에서 부화한 유충이 활성탄 여과지에서 떨어져 나와 수도관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공촌정수장의 경우 직결공급 시스템이어서 정수장에서 나온 수돗물이 2~4시간이면 가정집 수도꼭지로 공급돼 살아있는 유충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촌정수장 활성탄 여과지에서 채집한 유충과 가정집에서 나온 유충의 DNA를 비교한 결과, 서로 일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원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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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6월 인천 서구 수돗물 사태 당시 인천 너나들이검단맘 카페에 한 회원이 까맣게 변해버린 필터를 공개했다.(너나들이검단맘 까페 캡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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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촌정수장의 운영 미숙이 제기되는 데는 또 다른 근거도 있다.

서울 영등포정수장의 경우 한강 풍납취수장에서 취수한 같은 상수원수를 사용하고, 같은 고도 정수처리시설을 가동하지만 문제가 없다.

다만 영등포정수장의 경우 오존과 활성탄 시설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염형철 수돗물시민네트워크 대표는 "붉은 수돗물 사고 이후 제대로 된 시범 가동 없이 활성탄 시설을 서둘러 가동한 탓"이라며 운영 미숙을 탓했다.

인근 평촌정수장의 경우 하루 27만㎥의 수돗물 생산시설 중에서는 9만3000㎥에 대한 오존처리 시설은 2016년 5월부터, 나머지 17만7000㎥에 대한 오존 처리시설은 지난 3월부터 가동했지만, 그동안 공촌정수장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평촌정수장의 경우 이번에 죽은 유충이 일부 관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추정 단계이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조석훈 물이용기획과장은 "공촌정수장의 경우 분말 활성탄 여과지의 문제로 보이지만, 설계 문제인지 운영의 문제인지는 좀 더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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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붉은 수돗물' 사태 당시 수돗물 공급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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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천시 서구는 지난해 5월 붉은 수돗물 발생으로 큰 피해를 본 지역이다. 당시 붉은 수돗물은 수계 전환 과정에서 기존 관로의 수압을 무리하게 높이다가 수도관 내부 침전물이 떨어져나오면서 가정 수돗물에 흘러들었다.

공촌정수장의 관할 급수구역에 포함된 26만1000 세대, 63만5000명이 붉은 수돗물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됐다.



외국에서도 드물게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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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는 지난 2018년 11월 영국 노팅엄에서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된 사례를 보도했다. 이 경우는 도시 정수장 탓이 아니라 가정 물탱크의 오염 탓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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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되는 사례는 외국에서도 드물지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뉴포트 비치 지역에서는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돼 수돗물 공급이 일시 중단됐으나,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2015년 10월 미국 일리노이 주의 빌라 그로브 시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돼 시 당국에서는 수돗물을 끓여 마시라는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당국에서는 "(유충이 발견됐지만) 사람에게 해롭지는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탱크의 물을 흘려보내고 염소 소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유충 자체는 몸에 해롭지 않지만, 유충이 발견됐다는 것은 수돗물 수질이 어떤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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