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집주인에게 월세 내며 서울살이하는 시대가 오는 거 아닌가요?"
정부의 연이은 고강도 부동산 대책 발표로 시장에서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수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수가 늘었다는 통계가 나오자 이들이 집값을 올렸고, 내국인은 역차별을 받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 것. 하지만 정부와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이는 실상과 다른 점이 많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전경/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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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한국감정원 시스템을 통해 외국인의 주택을 포함한 전국 건축물 월별 거래 건수 추이를 살펴본 결과, 지난 5월 외국인의 건축물 거래량은 1507건이었다. 지난 4월(1224건)보다 23.1% 늘어난 수치다. 외국인의 전국 토지 거래량도 5월 1935건으로 집계돼 전월(1645건) 대비 17.6% 늘었다.
서울만 보자면 5월 외국인의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강남구(36건)였다. 4월(19건)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그 뒤를 구로구(25건), 은평구(20건), 양천구(18건), 영등포구(18건), 용산구(16건) 등이 따랐다. 양천구의 외국인 거래량은 4월(5건)보다 3배 이상인 수준이고, 용산구도 4월(7건)의 두배 이상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됐던 연초 대비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거래 심리가 살아난 것으로 분석한다.
주목할 것은 최근 들어 이를 보는 시장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인의 국내 주택 등 부동산 매입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 내국인의 손발을 묶고 있는데, 뒤에서 조선족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국내 아파트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잇달아 나온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3일 "7.10 대책에서 발표한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개편안은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같은 기준으로 동시에 적용된다"면서 "중국인 등 외국인과 역차별 논란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도 "현재 세금과 대출 등을 강화한 규제도 내·외국인이 똑같이 적용받기 때문에 외국인이라고 별다른 혜택을 받는 것이 없을 뿐더러 환율 변동에 따른 환헤지 리스크가 커 외국인의 직접 투자가 쉬운 환경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부동산을 산 외국인 중 이중국적자나 한국계 미국인인 경우가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 서초에 주택 매입을 하려는 외국인은 따지고 보면 한국계 미국인이나 이중 국적자 등 소위 검은머리 외국인이거나 실거주 목적의 외국인부부가 대부분이고 투자 목적의 순수 외국인은 드물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신문에도 이름이 나오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최근 국적을 외국으로 바꾸고 반포 아파트를 매입해 거래를 중개했다"면서 "영주권을 취득한 자녀 앞으로 주택을 사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외국인 매입 통계가 그리 새로워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한국 주택 시장이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거주자에게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국내에 주소를 둔 기간이 183일 이상인 개인으로 정의된다. 외국 국적을 가졌거나 영주권 등을 얻은 사람으로서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국내에 없고, 직업 및 자산 상태에 비춰 다시 입국해 국내에 거주할 것이라고 인정되지 않을 땐 ‘비거주자’로 여겨져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 등은 외국인에게 더 불리하고, 우리나라 아파트가 월세 중심 시장도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투자용으로서의 가치가 낮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해외 사례에 비춰봤을 때 외국인 투자자의 주택 등 부동산 매입에 우리나라가 유리한 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만 없을 뿐 다른 세율에 있어선 동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경우 외국인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 뉴질랜드 등은 외국인의 주택 매입에 높을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실수요자에겐 1~4% 수준의 낮은 세율을 부과하는 한편, 법인에는 최대 30%, 외국인에는 20%, 다주택자는 최대 15%의 추가 취득세를 부과한다.
홍콩 정부는 2016년 11월부터 외국인이 부동산 취득 시 납부하는 인지세를 종전 8.5%에서 15%로 상향하고, 3년 이내 매각하면 특별거래세 명목으로 매매가의 20%를 과세한다. 뉴질랜드는 2016년 한 해 동안 집값이 11% 급등하자 외국인 거주자의 주택 매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2018년 통과시켰다. 외국인이 신규 주택은 구매할 수 있지만, 기존 주택을 매입할 수는 없도록 한 것이다.
중국 교포(조선족)의 매수에 대해선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각 나라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해온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자 행태는 특수하다"면서 "이들은 뭉쳐서 상권과 주택 시장을 형성하는가 하면 중국인끼리만 사고파는 등 특유의 꽌시 문화로 거래하는 양상도 있어 캐나다 밴쿠버, 호주 시드니처럼 주택 시장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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