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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숨&결] 우리 각자의 정원과 그림자 /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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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보라 ㅣ 영화감독



“알 수 없잖아.”

영화 <벌새>에서 재개발 지역의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주인공 은희에게 한문 선생님 영지는 이렇게 말한다. 알 수 없잖아. 이 말은 늘 스스로 되뇌는 말이다.

2003년의 여름, 월곡동 재개발 지역에서 두달간 촬영을 했었다. 그곳에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촬영 내내 난 그곳의 ‘가난’을 찍고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를 느꼈다. 어느 날 촬영 장소 섭외 중에 동네 할머니의 집에 머무르게 됐다. 할머니의 집은 무척 오래된 회색빛의 집이었다. 하지만 곧 허물어질 것 같던 집 외관과는 달리 할머니의 방은 너무나 깨끗했다. 그래서 마치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았다. 노란색 장판은 반짝반짝 윤기가 났고 방의 모든 물건이 자기 자리를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잘 청소하고 정돈된 집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 집에서 난 할머니가 살아온 삶, 그녀의 어떤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한 피자 배달원이 하는 이야기가 내 마음을 울린 적이 있었다. 집마다 배달을 하도 많이 다니다 보니 집 현관 문턱에만 서 있어도 그 집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행복함이 느껴지는 집에는 거스름돈을 천천히 주며 잠깐이라도 더 머물고 싶다고. 나 역시, 할머니의 그 공간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아주 크고 화려한 집에 간 적도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 친구 재스민(가명)의 샌타바버라 집이었다. 단편 촬영을 위해 촬영감독인 나와 감독이 야외 정원을 찾자, 재스민이 자신의 부모님이 사는 샌타바버라로 우리를 초대했다. 재스민은 사회적 기준에서 아주 ‘예쁜’ 백인 아이였고 반에서는 늘 알 수 없는 구설에 올랐다. 재스민이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여 부모님 집으로 운전해 데려갔다. 엄청나게 큰 대문이 열리고 한참을 차로 가서야 집이 나왔다. 영국 영화에서나 보던 대저택이었다. 가정부를 위한 별채도 있고, 본채 거실에는 아트 딜러인 재스민 아버지의 수집품으로 보이는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모빌들이 걸려 있었다. 정원 사진 일부만 봤던 나와 감독은 어리둥절했다.

촬영이 막바지로 갈 무렵, 재스민과 나 둘만 집에 남았던 날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재스민에게 “이렇게 큰 집에 살면 어떤 느낌이야?”라고 물었다. 그녀는 “침대가 아주 작았는데 이사 오고 나서는 침대가 커져서 뛰어놀기 참 좋았어”라고 답했다. 재스민은 내밀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경찰이었던 친아버지와 살 때 무척 가난했고 지금의 아버지는 엄마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새아버지라고. 언젠가 재스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친아버지 사진을 올렸었는데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였다. 그는 이혼 후 홀로 방랑자처럼 살다 이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갖 오해에 시달리던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너무 담담히 말했기에 그러지 못했다. 재스민이 왜 그날 밤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때로 재스민을 떠올리면 황량한 서부 사막 같은 곳에서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떠도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려진다. 그 감정은 알 수 없는 이상한 슬픔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정원과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날마다 새롭게 나를 감격하게 한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습관처럼 판단, 분별한다. 때때로 맞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틀린다. 나는 내가 틀릴 때, ‘거봐 틀렸잖아’ 하고 안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알게 되어 상대를 더 좋아하게 되는 정원과 그림자도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것은 보고 싶지 않은 ‘깊은 곳’이다. 목도한 모두를 상처 주고 휘감는 칠흑같이 ‘깊은 곳’. 그것을 보고 나면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참혹한 심정으로 묻고 탄식한다. 끔찍하리만큼 알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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