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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故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훈육’ 빙자해 때리고 ‘우월적 지위’ 악용해 성폭력…판결문 속 ‘수많은 최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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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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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육상부 코치 A 씨는 2017년 6월 경기 결과에 실망해 혼자 방에서 울고 있던 여자 선수와 함께 술을 마신 뒤 이 선수가 잠들자 강제로 추행했다. A 씨는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났지만 이를 개의치 않고 추행을 지속했다. 피해 선수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후에도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다.

2017년 8월 전남의 한 고교 격투기 종목 선수는 훈련 도중 코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코치는 운동화를 벗어 선수의 허벅지를 10회 가량 때렸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보고 있는 자리였다. 이 선수가 얼마 전 목에 부상을 입었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찜질을 했다는 게 폭행 이유였다.

동아일보는 2017년 7월부터 올 7월까지 스포츠계 지도자들의 가혹행위 사건 판결문 21건을 분석했다. 최 선수 이전에도 ‘수많은 최숙현들’이 있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훈육을 빙자해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실업팀 추천 권한 등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했다. “욕을 먹거나 맞지 않으면 ‘이상한 날’일 정도로 가혹행위가 다반사였다”는 고(故) 최숙현 선수(22)의 동료들의 폭로는 스포츠계 전반의 문제였다.

판결문을 보면 스케이트를 타는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선수의 얼굴에 스케이트 날을 조립하는 데 쓰는 금속 나사를 수차례 집어던지고 머리를 때리는 등 황당한 폭행 사례가 즐비했다. 2018년 한 격투기 종목의 국가대표팀 감독이 실업팀 입단을 시도하던 피해자를 자신의 차로 불러낸 뒤 “내가 너를 실업팀에 보내줄 수 있다”며 강제추행한 사례도 있었다. 2016년 부산의 한 태권도 도장 관장은 미성년자인 도장 관원을 사무실로 불러 “따로 연습을 시켜줘 우수한 학생으로 키워주겠다”고 꼬드겨 강제추행했다.

범행 이후에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 중학교 유도부 수석코치는 전지훈련 도중 한 선수에게 “훈련 전 나를 깨워달라”고 유인한 뒤 강제 추행했다. 그는 재판에서 “(피해자와) 사귀는 사이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피고가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며 징역 6년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폐쇄적이고 수직적으로 운영되던 유도부에서 피해자는 코치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판단했다.

선수들은 외부에 피해를 알리기가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다. 초등학생 시절 테니스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한 전직 테니스 선수는 관련 재판에서 “당시 폭언과 구타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였고 거짓말쟁이로 몰리고 혼날까봐 참고 견뎠다. 코치가 기분이 안 좋으면 운동을 더 힘들게 시키고 더 많이 때렸다”고 진술했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반복되는 스포츠계 가혹행위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관련 기구들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12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선수단의 ‘팀 닥터’로 불렸던 운동처방사 안모 씨(45)에 대해 폭행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은 10일 안 씨를 체포해 이틀 간 조사했다. 경찰은 안 씨를 상대로 최 선수 폭행 혐의 이외에도 경주시청 선수단 여자 선수들을 성추행 한 혐의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운동처방사 2급 자격증만 소지한 안 씨가 선수들에게 치료비 명목으로 매월 수십만원 씩 받으며 치료 행위를 벌인 정황도 포착해 조사 중이다.

김소영기자 ksy@donga.com
대구=명민준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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