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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매경춘추] 함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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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절망에 습관이 들어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흑사병에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코로나19라는 커다란 질병을 마주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교훈이다. 코로나19 이후 대학가도 갑작스러운 온라인 강의와 방역 등 수많은 문제로 혼란스러웠다. 또 이에 대응하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그중에서도 언론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미국 스탠퍼드대, 하버드대, MIT를 주축으로 30여 개 대학이 참여한 '코로나19 기술 접근 지원체계(COVID-19 Technology Access Framework)'가 그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들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예방부터 진단, 치료에 관련된 모든 기술과 지식재산을 전 세계 기업에 무상으로 이전해주는 시스템이다. 대학과 기업 간 기술 이전은 여러 행정 절차가 필요하지만 모든 절차는 최소화하겠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다.

미국의 행정 절차가 꼼꼼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 획기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무료로 기술 이전을 받는 대신, 이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은 최대한 빠르게 상용화하되,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상품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의무를 진다.

기술 이전은 대학이 보유한 원천기술로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대학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로 언급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실제로 이 협력의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대학들이 코로나19라는, 커다란 '인류의 적' 앞에서 금전적 가치보다는 인류의 지속적 발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판단하고 손을 잡았다는 것은 솔직히 놀랍고 부러웠다.

사실, 우리 대학들도 지난 한 학기, 얼마든지 힘을 합칠 방안은 있었다. 미국 대학들처럼 대학이 소유한 기술과 특허를 무상으로 내놓을 수도 있었고, 교육 분야에서도 기존 MOOC 자료 공유, 새로운 공동 강의 제작, 시설물 공동 사용 등 협력할 수 있는 사항도 많았지만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나 대학에는 코로나19 외에도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큰 도전들이 닥쳐올 것이다.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 변화, 새롭게 생겨날 전염병, 기후 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등 셀 수 없는 일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도전들에 있어 우리는 계속 절망하고 각자도생(各自圖生)에만 힘을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미국 대학들이 택한 것처럼 '함께의 힘'으로 같이 헤쳐나갈 것인가.

'페스트'의 주인공 중 하나인 랑베르가 던진 이 말도, 그래서 여전히 인상적인 한마디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김무환 포스텍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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