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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김성훈의 현장에서] 집값 대신 공무원 잡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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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공지) 은성수 금융위원장 부동산 매매 관련 - 매수자가 나타나 7월8일 매매합의를 했고 가계약금을 수령했습니다.”

8일 오후 9시30분 금융위원회는 갑작스레 이 같은 공지문자를 출입기자들에게 발송했다. 일반적으로 정부 정책 홍보나 해명을 할 때 문자를 보내는데, 위원장 개인의 재산 처리 상황을 중계하는 알림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계약이 완료되기도 전 가계약 중에 마치 대단한 홍보 사항이나 되는 것처럼 다급히 알려온 것에서, 은 위원장이 ‘다주택자’라는 꼬리표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부가 2급 이상 고위공직자 중 다주택자를 전수조사하고, 집을 팔지 않으면 승진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나서자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공무원 사이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과 함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2급 공무원은 공직자 재산 공개 대상도 아닌데다 개인적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몰아친다는 불만이다.

은 위원장만 하더라도 2주택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그는 애초 서울 서초구에 잠원동 현대아파트를 분양받아 소유하고 있었던 1주택자였다. 그런데 정부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아야 했다. 세종시의 한 공무원은 “세종시 이전 초기에는 그곳 아파트를 분양받지 않으면 ‘세종시에 안 가겠다는 것이냐’는 식으로 해석돼서 울며 겨자 먹기로 분양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가족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공무원인 남편이나 아내의 직장이 세종시로 옮겨갈 경우 불가피하게 2주택이 된 경우가 있는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서 ‘2급 이상’ 공무원 다주택자들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서자 공무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후속 대책들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정부를 향하자 부동산 정책을 펴는 공무원들부터 솔선수범해 ‘다주택 상황’을 해소하라는 것이 총리 발표의 핵심이다. 문제는 부동산 실정의 책임은 정부에 있는데, 그 해소 방안으로 공무원들이 타깃이 됐다는 점이다.

공무원 사이에선 ‘직이냐 집이냐’를 두고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형국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한다. 진급을 포기하고 집을 지키느냐, 집을 포기하고 진급을 택하느냐가 두 가지 선택지다. 공무원 가정마다 일어나고 있는 ‘가정불화’는 덤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집을 팔자는 얘기를 아내에게 했다가 진급을 포기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핀잔만 들었다”고 말했다. 업무 능력보다 부동산 소유 여부가 개인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는 현 상황에 울분을 토하는 공무원들도 부지기수다.

정부는 애매한 ‘공무원 주택 전수조사’ 카드 대신 안정적인 주택 추가 공급 정책을 내놓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최근 급등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해법을 서울 등 도심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협회는 상업지역 주거비율 90% 미만 제한폐지 및 공공기여 방안 마련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층수 규제 완화 및 용적률 상향을 강조했다. 충분히 귀기울여 들을만한 조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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