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폭력]경주시청팀 계약조건 논란
고 최숙현 선수가 2017년 경주시청 직장운동부 트라이애슬론팀에 처음으로 입단할 때 작성한 서약서(왼쪽)와 입단계약서. 최 선수를 비롯한 팀 선수들은 1년마다 재계약해야 했다.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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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숙현이에게 ‘너 지금 그만두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숙현이는 그래도 나가고 싶어 했다.”(고 최숙현 선수 아버지)
지난달 최 선수가 폭력 등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체육계는 왜 이런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되느냐”는 논란이 커졌다. 그런데 동아일보에서 입수한 최 선수의 계약서를 보면 가혹행위를 감수해야 했던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계약서의 제5조에는 “계약 만료 후에는 재계약에 있어서 ‘갑’(경주시체육회장)이 우선권을 가진다”고 나온다. 이 선수단은 1년마다 재계약하도록 돼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부의 한 부장판사는 “계약 기간이 끝나도 선수가 쉽게 다른 곳에 가지 못하고 ‘갑’이 재계약 우선권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선수에게 불리한 계약으로, 선수를 팀에 ‘얽어매는’ 꼴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 ‘타 팀 이적 시 동의’ 조항에 발 묶여
최 선수 역시 2017년 경북체고를 졸업한 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에 입단하며 경주시체육회와 1년마다 계약을 갱신했다. 최 선수는 컨디션 저조로 운동을 쉰 2018년을 제외하고 2017년, 2019년에 계약했다. 한 체육계 인사는 “재계약은 물론 이적에 결정적인 권한을 가진 감독의 말을 거스르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계약 근거가 되는 ‘경주시청직장운동경기부 설치 및 운영관리 내규’는 더 문제가 많다. 내규에 포함된 ‘선수단 입단협약서’ 제10조에는 “타 운동부 소속으로 이적할 때에는 단장 및 감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정해 놓았다. 민사부 부장판사는 “입단협약서가 최 선수의 개인 계약서보다 더 불공정하다. 재계약 시 우선권을 가지는 것을 넘어 감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건 ‘갑’에게 더욱 유리한 계약이다. 동의를 못 받으면 다른 데 못 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6일 추가 피해를 증언했던 A 선수의 어머니는 “딸이 ‘엄마가 위약금을 대신 내줬으면 좋겠어. 난 여기서 그만하고 싶어’라고 2, 3차례 말했다”고 했다. 경주시체육회에 따르면 감독이 말한 ‘위약금’은 한 번도 집행된 적은 없다.
○ 체육계도 ‘표준근로계약서’ 도입해야
선수들이 불리한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건 공정한 계약을 보장하는 ‘표준근로계약서’가 없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실업팀 선수들의 계약을 일괄 규정하는 표준계약서는 없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사정에 따라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조응형 yesbro@donga.com·박종민·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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