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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익산 투어] 20년간 매달려 복원했네…1000년 세월의 풍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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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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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쨍하게 좋아서 아쉬워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인사였다. 날이 좋아서 아쉽다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미륵사지가 가장 멋있을 때는 흐린 날, 비 오는 날 그리고 눈 내리는 날입니다. 나중에 꼭 다시 오셔서 꼭 느껴보셔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날씨. 여행에선 으레 맑은 날을 기대한다.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는 걸 익산에서 배웠다. 날이 흐리고 궂을수록 눈꽃송이가 더덕더덕 붙어 시야를 가릴수록 더 무르익는 풍경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장장 20년이 걸린 복원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지막으로 미륵사지에 왔던 때가 기억났다. 8년 전 겨울이었다. 해가 바뀔 때 즈음 혼자 미륵사지에 갔었다. 그땐 마침 날이 궂었다. 넓은 절터에 움직이는 생명이라고는 나 말고 없었다. 미륵산을 넘어온 안개가 사위를 덮어 잔뜩 흐렸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안 되는 기묘한 분위기에 한참을 머뭇거렸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때 기억이 꽤 강렬했던지 다녀오고 나서도 한참 미륵사지를 생각했다.

익산에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지난해 4월. 장장 20년에 걸친 미륵사지 석탑 복원 작업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탑을 지탱하던 흉물스러운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새로 단장했다는 말에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미륵사지 석탑의 존재는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았다. 복원 중이라는 사실 역시 교과서에서 배웠다.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4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체보수가 결정 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거쳐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미륵사지 석탑은 한참 '복원 중'이었다. 영원히 복원 중일 것만 같았던 미륵사지 석탑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보인다니, 대놓고 반가웠다.

날씨 탓인가, 계절 탓일까. 오랜만에 찾아간 미륵사지는 기억 속 그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탑도 복원이 됐고 국립익산박물관까지 개장해 어엿한 명승지 느낌이 났다.

"미륵사지는 '미륵사가 있던 곳'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선화공주의 남편 무왕이 지은 절이라고 나와 있어요. 절터 뒤로 보이는 산은 미륵산인데, 옛날엔 용화산이라고 불렸죠. 무왕과 왕비가 사자사라는 암자로 가다가 연못에서 미륵삼존을 만나 경의를 표했다고 해요. 부인이 왕에게 이곳에 절을 지어달라고 요청해 만든 것이 바로 미륵사입니다." 미륵사지 석탑으로 가는 길에 신인화 미륵사지 문화관광해설사가 조곤조곤 설명을 해줬다.

미륵사는 약 7세기에 지어져 1587년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는 다행히 절이 보존됐지만 이후 정유재란 때 폐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 열린 결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복원

미륵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3탑 3금당으로 지어진 절이다. 복원된 석탑 두 개 가운데에 목탑이 존재했지만 불타 없어졌다. 현재 복원된 건 석탑 두 개다. 미륵사지 석탑은 각각 동탑과 서탑 혹은 동원 석탑, 서원 석탑으로 불린다.

동탑은 미륵사지 9층석탑이라고도 불리지만 서쪽 탑은 그저 미륵사지 석탑이다. 오른쪽 탑은 9층짜리 탑으로 복원된 것에 비해 최근 공개된 왼쪽 탑은 6층까지만 복원됐고 그마저도 사방이 전부 제각각인 미완성의 모습이다. 20년이나 공들인 석탑을 미완의 모습으로 남겨둔 데에는 다 사연이 있다.

1992년 당시 정부는 동쪽 석탑 복원을 추진했다. 석탑의 원형을 알려주는 문헌이나 그림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효율성만 따져 2년 만에 졸속으로 탑을 완성시켰다. 한국 문화재 복원 역사상 최악의 사례로 꼽히는 동탑을 보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최악의 복원 사례고 폭파해 버리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서탑을 복원하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추정에 의한 복원은 하지 않겠다'가 원칙이었다. 더 꼼꼼하게 자료를 살폈지만 6층인지, 7층인지, 9층인지, 어떠한 문헌에서도 미륵사지 석탑의 층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해서 내린 결론은 현재 남아 있는 모습까지만 복원하는 것이다. 당시 복원 작업을 진행했던 학예사들이 이 작업을 복원이 아니라 해체·보수라고 표현한 이유다. 탑에 대해 알려주는 새로운 역사적 근거가 발견되면 그때 다시 탑을 복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열린 결말이라고나 할까. 무리해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륵사지 석탑을 구경하는 동선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동탑 속에서 바라보기. 오른쪽 문을 통해 들어가 심주석을 지나 반대편 문 사이로 보이는 서탑을 감상한다. 다음엔 서탑으로 이동해 탑돌이하듯 사방에서 탑 모양을 지그시 바라보는 순서다.

28년 된 동탑은 칼로 썰어낸 듯 네모반듯하고 민망할 정도로 뽀얀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욕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서쪽 탑은 그런 여론을 엄청나게 의식한 티가 났다. 남아 있는 옛날 돌을 최대한 가져다 썼다. 사면의 모습도 전부 다르다. 한쪽 면이 무너져 내린 모양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같기도 하다. 8년 전 겨울이나 지금이나 미륵사지 석탑을 보고 있자니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한다. 예까지 오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시간들이 떠올라 괜히 측은한 마음까지 들다가도 별안간 그게 뭔 대수일까 싶다. 1000년의 세월을 견뎌낸 석탑은 여태까지 그래왔듯 온갖 풍파를 지켜보면서 계속 이 자리를 지킬 텐데 말이다.

[익산 =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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