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도시계획·부동산 정책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행된 경기 부양책 때문에 자산시장에 거품이 더 낄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한국 부동산 정책의 틀을 수정해야 한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2~3년 동안 미국과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연합 회원국) 등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어왔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와 무역, 관광 등 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은 각국 정부들은 당분간 양적 완화 기조를 유지할 분위기다.
최근 공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6월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미 연준은 오는 2022년까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동결할 방침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5월 기준금리를 긴급 추가 인하해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5%까지 낮췄다. 시중에 공급된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 등 전 세계 자산의 가격을 띄우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이다.
최고 금리 연 5.2%인 MG새마을금고의 특판 예금에 가입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기다리는 인파 /조선DB |
유동성은 전세계에서 예외 없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주택 가격이 가장 안정된 국가로 꼽혔던 독일마저 정책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이후 10년 동안 베를린, 뮌헨, 쾰른, 드레스덴,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 7개 도시의 주택가격은 평균 118.4% 상승했다. 유로존에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건설 관련 규제와 신규 개발 억제 정책 때문에 늘어난 수요에 비해 주택 공급량이 부족했던 점이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동성이 늘어난 상황은 비슷하지만, 주택정책의 방향은 대조적이다. 영국, 호주, 싱가포드 등 주택 문제를 겪는 정부들은 주택시장에서만큼은 공급 확대 기조로 접근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위헌 논란이 나올 정도로 주택 매매와 대출을 제한하는 수요 억제 정책을 주로 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시드니, 멜번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한 호주의 경우, 연간 15만가구 수준이던 주택 건축 인허가 수를 2014년을 기점으로 연 20만가구로 대폭 늘려 효과를 본 사례다. 호주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연 10~12%를 넘나들던 주택가격지수 상승률은 늘어난 건축 물량이 본격적으로 주택시장에 공급된 2018년을 기점으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영국 역시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 지난 2017년 공급 확대에 방점을 찍은 주택 정책 백서를 마련해 15만~17만가구선이던 연간 주택 공급량을 오는 2024년까지 30만가구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영국은 특히 신규 개발예정지역에 정부 재원을 투입해 각종 기반시설을 먼저 건설한 다음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신도시 입주가 끝난 뒤에도 몇 년 동안 철도 등 광역교통망 건설 사업이 지연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터지는 한국의 도시개발사업에서 참고해야 할 만한 부분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분양전환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수혜를 볼 수 있는 범위를 넓게 잡았다. 가족 단위는 물론, 1인 가구나 약혼한 커플도 청약할 수 있다. 가구당 2번까지 분양을 받을 수 있고, 소득 기준은 가구 합산 월 1만4000싱가포르달러(한화 1200만원) 이내면 된다. 35세 이상인 1인가구는 월 소득 기준을 7000싱가포르달러(약 600만원)로 별도로 정했다.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게는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금도 차등 지급한다.
수도권 3기 신도시인 하남 교산신도시 예정 부지 /장련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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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건설 분야 전문가들은 수요자들이 주택 공급량을 예상하고 매매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고, 실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권영선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3기 신도시 등 공급 계획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서울 등 수도권 재건축사업에 대한 확실한 로드맵도 마련돼야 한다"면서 "관련 법이 있고 주택 노후 문제 등 재건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도 부동산시장이 들썩일 것 같다는 이유로 인허가가 이뤄지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규제가 신설되면서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나 서울시 등이 재건축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장기적인 플랜을 마련해 정비사업을 통해서도 주택이 꾸준히 공급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주택 수요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예측치에 격차가 있는 편인데, 단순히 구매력을 갖춘 구매 의향자를 뜻하는 ‘주택 수요(demand)’와 모든 가구가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지를 얻는데 필요한 ‘주택 소요(needs)’는 다르다"면서 "주택 보급률을 계산할 때도 독립하지 못한 캥거루족처럼 숨겨진 가구나 가구원 수에 비해 좁은 집에 사는 경우 등은 수요에 추가해야 하고, 주택 수에서도 낡은 빈집이나 쪽방 등 열악한 주거지는 제외해야 현황을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한빛 기자(hanvi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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