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뉴스 실화 영화 '밤쉘' 8일 개봉
美'킹메이커' 로저 에일스 '미투' 담아
스타 배우 샤를리즈 테론 제작·주연
트럼프 '여혐발언' 맞선 폭스앵커 역할
미국 '미투' 운동의 큰 도화선을 그린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왼쪽부터) 샤를리즈 테론과 니콜 키드먼은 얼굴에 실리콘 보형물을 붙여 실존 인물과 흡사한 모습이다. 테론과 마고 로비(맨 오른쪽)은 이 영화로 올초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씨나몬 홈초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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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의 오랜 악습을 뒤집은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건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매체 폭스뉴스였다.
8일 개봉하는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감독 제이 로치)은 폭스뉴스의 설립자이자 공화당의 ‘킹메이커’로 꼽히는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이 수십 명의 성희롱 폭로로 추락한 실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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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보수상징 몰락시킨 '미투' 불씨
폭스뉴스 진행자였던 그레천 칼슨은 2016년 해고된 후 에일스를 성희롱 혐의로 고소했고 에일스가 승소할 줄 알았던 소송은 불과 16일 만에 그를 파멸시켰다. 폭스뉴스 간판앵커 메긴 켈리를 비롯해 20여 명 여성 피해자가 나서면서다. 에일스의 불명예 사퇴는 전 세계에 파문을 던졌고 침묵은 깨졌다. 칼슨은 2000만 달러(약 239억원) 합의금을 받았다.
왼쪽부터 영화 '밤쉘'의 실존 모델인 전 폭스뉴스 회장 로저 에일스와 전 폭스뉴스 간판앵커 메긴 켈리.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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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과 주연을 겸한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대본을 받은 게 2017년 여름.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성추문이 폭로되기 불과 2개월 전이었다. 영화사와 인터뷰에서 그는 “대본에는 와인스타인 ‘미투’가 터지기 1년 전, 미디어 산업계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이 다뤄져 있었다”면서 “이 이야기를 남자(‘빅쇼트’ 각색가 찰스 랜돌프)가 썼다는 데 감동받았다. 이 운동을 처음 이끈 여성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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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대선후보 트럼프 실제 모습 카메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에서 폭스뉴스 회장이자 오랜 성희롱이 폭로된 로저 에일스. 배우 존 리스고가 귓불, 턱 등에 실리콘 보형물을 붙이고 실존 인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연기했다. [사진 씨나몬 홈초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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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래전 성적 관계를 가졌어야 했다.” 에일스의 이런 발언은 실제 칼슨이 소송 중 녹음파일로 폭로한 것. 방송국 신입인 케일라 포스피실이 에일스의 개인 사무실에서 신체 노출 등 위계에 의한 성희롱에 시달린 것도 실제 피해자들 증언이 바탕이다. 랜돌프는 “가해자에게 굴복하는 일이 인생에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려 했고 실존 인물에게 짐을 지우기 싫어 허구적인 인물을 만들었다”고 했다. 진보적인 동성애자인 폭스뉴스 직원 제스카(케이트 맥키넌)도 허구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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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스타 메긴 켈리 고민…"충성심 때문"
로저 에일스 폭스뉴스 전 회장을 성희롱으로 고소한 전직 폭스뉴스 방송 진행자 그레천 칼슨. 영화에선 니콜 키드먼이 연기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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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메긴 켈리의 미묘한 내적 갈등도 공들여 그렸다. 그는 과거 에일스에 의해 성희롱을 당했지만 이후 자신을 폭스뉴스 스타로 거듭나게 도운 에일스를 두고 갈등한다. 샤를리즈 테론은 “켈리가 충성심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면서 “그 부분도 더 많이 논의했으면 한다. 여성들은 학대가 멈추길 바라면서도 가해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많이 느낀다”고 영화사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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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 "뜨겁고 힘있다" VS "얕고 평평"
지난해 12월 미국 개봉 후 현지 평가는 엇갈리는 분위기다. 평단의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70%, 메타크리틱은 100점 만점에 65점에 불과했다. 언론사 LA타임스의 빈 건물에 재현한 폭스뉴스 사무실, 아카데미 수상 분장감독 카즈 히로(‘다키스트 아워’)가 서너 시간씩 공들인 실리콘 특수분장 등의 사실성에 더해 당면한 화두를 끄집어낸 “뜨겁고 힘있는 영화”(버라이어티)란 호평과 “주제를 깊이 파고들지 못해 평평해졌다”(시애틀타임스)는 비판이 엇갈린다.
영화가 미국서 개봉한 지난해 12월 제작자 겸 주연배우 샤를리즈 테론과 제이 로치 감독이 비버리힐스 포시즌호텔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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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평의 또 다른 요인은 실존 인물 메긴 켈리다.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 비하 발언을 놓고 설전을 벌이며 문화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사실 그 자신도 2004년 폭스뉴스에 입사해 간판앵커로 거듭나며 수차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비판받아왔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2018년 NBC방송으로 옮긴 뒤 ‘블랙페이스 분장’에 대해 “뭐가 문제냐”는 발언을 해 큰 지탄을 받고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지난해 1월 퇴사하기까지 했다. 백인이 흑인 흉내를 내는 '블랙페이스 분장'은 미국에선 흑인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통해 금기시되고 있다. 미국 매체 ‘슬레이트’는 “켈리 자신이 생방송중 ‘블렉페이스’를 옹호해서 해고됐음을 떠올리면 (영화 속 주인공에게) 연대하기가 약간은 힘들다”고 꼬집었다.
켈리 자신은 이 영화에 꽤 흡족해하는 눈치다. 올 1월 전직 폭스뉴스 동료들과 유튜브를 통해 영화에 일부 허구도 있다고 밝혔지만(영화 속 2015년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켈리가 트럼프 후보의 여성 비하 발언을 공격한 질문에 대해 에일스가 흡족해했다고 묘사한 것은 사실과 다르며 실제로 에일스는 당시 크게 화를 냈다고) 대체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 '밤쉘' 주연배우 니콜 키드먼, 샤를리즈 테론, 마고 로비가 지난해 10월 미국 LA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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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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