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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죽음 부른 업무 구조조정…‘서비스 만족도 1위’ 우정사업본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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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광화문우체국 앞서 기자회견 열려

“무리한 구조조정 중단하라”

근무지 변경 뒤 숨진 자회사 직원 김씨 “공황장애 시달려”

사쪽이 업무시간과 근무 마음대로 변경한다는 비판도 나와

1개월 ‘쪼개기’ 근무도 빈번…“모든 고통 노동자가 진다”


한겨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정본부(준)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우정사업본부의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며 연 기자회견에서 무기계약직 노동자 김혜정 씨(앞줄 왼쪽 둘째)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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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 자회사인 우체국시설관리단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던 김아무개(49)씨는 지난달 9일 뇌출혈로 쓰러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술·담배도 안한 김씨였다. 그의 동료들은 그가 최근 업무지 변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전했다.

2019년 7월, 우정사업본부는 김씨가 10년 넘게 일한 해운대수련원을 구조조정으로 폐쇄했다. 갑자기 권고사직을 당한 김씨의 근무지는 대전 중부권광역물류센터로 바뀌었다. 근무지가 바뀌며 월급 수십만원이 줄었고,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됐다. 자취방 비용까지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갑작스런 환경 변화로 김씨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김씨의 유족 쪽은 업무관련성을 들며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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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정본부(준)가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연 우정사업본부의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벽에 기댄 채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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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연속 공공서비스 부분 고객만족도 1위를 기록한 우정사업본부의 성과 이면에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며 우정사업본부의 무리한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4일 열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정본부(준)는 이날 오후 1시 서울지방우정청이 있는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정사업본부가 무기계약직 및 비정규직의 희생을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대규모 적자에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으로 ‘돈벌이’가 안 되는 우체국이나 사업을 폐지하는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가장 큰 피해자가 이들 노동자라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쪽이 근무시간과 업무를 마음대로 변경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업무량에 따라 단시간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4~5시간으로 줄이는 일이 수시로 벌이진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워킹맘’ 김혜정(42)씨는 무기계약직 노동자이자, 3살 난 쌍둥이의 엄마다. 2012년부터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민원 업무를 한 김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해왔다. 그러나 사쪽은 올해 초 갑자기 김씨가 있던 부서를 구조조정한다며 작업장 분류직으로 가라고 통보했다. 업무 시간도 오후 2시부터 11시로 강제 변경됐다. ‘아이를 돌봐야해서 어렵다’는 김씨에게 사쪽은 ‘싫으면 4시간만 일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안 그래도 세후 170만원정도 받는데 업무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면 살 수가 없다. 구조조정한다는 원래 부서의 공무원 수는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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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 길게 늘어선 기자회견 참가자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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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쪼개기 계약’ 등 공공기관인 우정사업본부가 불안정 일자리를 대거 만들어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노조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해 초부터 우정사업본부 원주우편집중국에서 비정규직을 1~3개월에 한번씩 재계약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최대 근무 기간이 9개월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중원 민주우정본부 위원장은 “주변 물류센터가 생겨 물량이 줄었다는 이유로 우정사업본부는 ‘쪼개기’ 계약을 이어갔다. 퇴직금을 안 주기 위해 1년을 안 채우고 내보내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여파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민주우정본부는 공무직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식 국가공무직 인력으로 편제되면 이들의 인건비를 사업비가 아닌 정식 인건비로 책정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현수 전국우편지부 교육국장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관리자들 업무시간을 6시간으로 줄였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왜 모든 고통을 (현장) 노동자가 짊어저야 하나”고 주장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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