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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승자 없는 평화’란 윌슨의 몽상이 히틀러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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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기에 신흥 강자로 떠오른 미국… 제국주의 후 新질서 꿈꿔

조선일보

대격변

애덤 투즈 지음|조행복 옮김 아카넷|748쪽|3만3000원

홍수는 옥석을 가리지 않고 대지를 휩쓴다. 1차 세계대전이 전후 국제질서에 그런 일을 했다. 이 전쟁으로 합스부르크 등 유럽 주요 왕조가 몰락했다. 세계를 여러 세력권으로 나눠 먹던 제국주의 질서에 금이 갔다. 홍수 이후 떠오른 미국은 구질서를 미국식 신질서로 대체하려 했다. 그러나 아직은 자신이 가진 힘을 요령 있게 쓸 줄 모르는 미숙한 거인이었다.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고 대공황을 거쳐 2차 대전이란 파국을 향해 달려갔다. 애덤 투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책에서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戰間期)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부터 1차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했던 국제연맹의 한계, 전후 독일을 혼란으로 몰아간 인플레이션, 유럽 각국 화폐의 금본위제 귀환, 배상금과 전쟁 채무를 둘러싼 이해충돌에 이르기까지 전간기의 초상화를 정밀하게 그린다. 이 가운데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윌슨 대통령의 비전이다. 윌슨은 유럽의 제국주의가 미국의 국가이익과 상충한다고 봤다. 거대한 영토를 가진 미국은 식민지가 필요 없는 강대국이었다. 식민지를 갖기보다 문호 개방과 항해의 자유라는 새 국제질서 아래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기를 원했다. 이런 조건은 전쟁에서 미국을 독특한 위치에 서게 했다. 독일을 무조건 항복시키기보다 누구도 승리하지 않은 상태로 전쟁이 끝나길 바랐다. 그래야 영국과 프랑스를 발아래 둘 수 있었다. 유명한 '승리 없는 평화' 연설의 배경이었다. 그렇게 평화가 정착한 세계의 리더 자리는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차지여야 했다. 전후 워싱턴에서 열린 해군회담은 미국의 이런 의지를 세계열강에 강요한 자리였다. 회담에서 영국·프랑스·일본 등이 보유할 수 있는 전함의 수가 정해졌다.

조선일보

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환호하는 군중들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승전국들이 부과한 과도한 전쟁 배상금이 히틀러의 등장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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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쟁도 없고 승자와 패자도 없는 세계’라는 윌슨의 거대한 비전은 왜 실패로 끝났는가. 이 책을 읽는 재미는 그 실패를 들여다보는 데 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우연과 필연의 합주였다. 미국은 전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고자 했지만, 자국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하며 전쟁의 진창으로 빨려 들어갔다. 참전한 이상 연합국 편에 서야 했고, ‘승리 없는 평화’는 헛꿈이 됐다. 윌슨은 레닌을 민주주의 동반자로 오판하는 실수도 저질렀다.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린 레닌은 정권 장악에 집중하기 위해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전쟁 밖으로 탈출하려 했다. 그런 속도 모르고 윌슨은 “러시아는 정치 발전과 국가 정책을 방해받지 않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지했다. 이 발언은 폭력을 동원해 공산화를 추진하던 레닌에게 날개를 달아줬고, 전체주의 소련의 등장을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스스로 국가 정체성을 확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윌슨은 국제연맹 창설을 제창하고도 정작 의회의 지지를 얻지 못해 연맹에 가입하지 못했다. 여기에 개인적 불행까지 겹쳤다. 윌슨은 의회의 반대를 뚫기 위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 모든 혼란이 불과 20년 뒤 또 한 번의 세계대전으로 귀결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도 2차대전 발발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무엇이 대공항을 불러왔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저자는 여러 이유 가운데 지구적 차원의 디플레이션을 초래한 유럽 각국의 금본위제 복귀를 주목한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가 급속히 식어갔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이었던 미국이 장차 갖게 될 엄청난 영향력에 대한 공포도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의 이탈리아, 제국주의 일본을 무모한 전쟁으로 몰아가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전간기의 혼란이 2차 대전을 불렀다고 해서 그 사이의 대격변이 온통 허망했던 것은 아니다. 가령,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탄생시켰던 발트 3국은 소련 팽창기에 잠시 사라졌지만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다시 독립했다. 1차 대전 종전 후 또 다른 전쟁을 준비했던 독일이 2차 대전 후엔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전간기 경험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몽상가라 조롱당했던 윌슨이 꿈꿨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태동해 2차 대전 후 세계질서로 자리 잡았다. 문득, 코로나 19로 인한 격변기를 맞은 인류가 만들어갈 내일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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