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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비정규직 직고용했더니…회사·정규직·비정규직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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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비정규직 직고용한 서울대병원

“재계약 때마다 불안에 떨었지만

용역 소속일 땐 없었던 교육 받고

책임감 생겨 더 자발적으로 일해”

지난해 ‘614명’ 직접고용 전환 뒤

기존 정규직, 교육·관리 부담 덜고

환자들은 서비스 만족도 높아져

병원선 업무효율 상승 ‘윈윈’ 효과


한겨레

이연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전 민들레분회장(왼쪽)이 지난해 9월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열린 천막농성 해단식에서 동료들과 인사를 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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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의 ‘냉동공’ 김아무개(53)씨는 1992년부터 이 병원에서 일했지만 이제야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서울대병원의 18곳 외주업체 중 한 곳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씨는 다른 613명의 비정규직과 함께 지난해 11월 병원에 정규직으로 직접고용됐다. 약품 냉장고 등을 수리·관리하는 그는 직접고용 뒤 일이 늘었다고 했다. “예전엔 우리 업체가 맡은 건물만 챙겼는데 이제 다른 건물들도 제가 보게 된 거예요. 일은 힘들어졌는데 책임감 때문에 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는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신이 난다”고 했다. 계약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8년간 그는 10번이 넘는 재계약을 거쳤고, 218명 중 105명의 동료가 잘려나갔다. 이젠 그런 불안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해고의 불안이 사라진 노동자들은 서울대병원에도 긍정적인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책임 있는 노동 덕에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코로나19 국면에선 모두가 한마음으로 ‘안전 진료’를 펼칠 수 있었다. 기존 정규직들은 때마다 바뀌는 외주업체 비정규직들을 재교육하느라 힘 빼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직접고용 효과가 선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논란을 빚는 가운데, 직접고용이 비정규직 당사자만이 아니라 회사와 고객, 기존 정규직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대병원 기존 정규직 노조의 김태엽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코로나19로 위태롭던 올해 초 직접고용의 효과가 톡톡히 드러났다고 봤다. “우리 병원에선 방호복 교육을 모두에게 주기적으로 해요. 마스크 같은 방호장비들도 모두에게 지급하니 더욱 안전하고요. 아직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이 안 된 보라매병원에선 (현장을 관리하는) 반장이 입는 법 한번 보여주고 끝이에요.” 시립 보라매병원은 서울대병원이 위탁받아 운영하는데, 김병관 병원장 등 사쪽이 ‘정규직 전환 합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김 분회장은 이런 조처가 결국 “환자의 안전” 문제라고 봤다. “정규직 전환으로 더 안전하게 감염병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환자들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비정규직 미화노동자였던 박서윤(54)씨는 지난 연말 환자에게 처음으로 감사카드를 받고 얼떨떨했다. “아들이 입원을 했는데 침대를 너무 성실히 청소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용역업체일 땐 교육도 없었고 우리가 주삿바늘에 찔려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소독할 때 락스 비율조차 꼼꼼히 계량한다”고 자랑했다. 책임감이 커졌다는 박씨는 “용역 땐 출근해서 일 끝나고 쉴 일만 생각했다. 이젠 먼저 나서서 일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김진경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장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교육과 관리감독 수준이 높아져 고객에게 이롭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논란도 고객 관점에서도 생각해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원 쪽도 직접고용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영권 서울대병원 행정처장은 “정규직 전환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비용 인상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환된 직원들이 이전보다 책임감 있고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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