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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핫이슈] 규제 폭탄과 집값 상승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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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서 서울 아파트 값이 53% 올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가격 상승률의 2.5배,가격 폭등 속도는 7.5배다."

정부와 각을 세우며 일부러 난처하게 만들려는 반정부 기관의 분석이 아니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정권별 아파트값 상승 실태' 발표 내용이다.

경실련은 이날 서울 아파트 값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 평균 6억600만원이던 게 9억2000만원으로 3억1400만원, 54% 올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집권 이후 3년간 21번에 달하는 부동산정책을 발표했지만 서울 아파트 값이 평균 3억원 이상 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권 출범 첫 달과 마지막 달 아파트 중위가격(가격대별로 줄세웠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가격)을 비교한 결과다.

같은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 때 서울 아파트 가격은 4억6500만원에서 5억9900만원으로 1억3400만원, 29% 올랐고, 이명박 정부 때는 4억8000만원에서 4억6500만원으로 1500만원, 3% 떨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간의 상승률에 비해 문재인 정부 3년여 간의 상승률이 2.5배가 높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이전 정권에 비해 크게 올랐다는 지적이 나오자 국토교통부는 부랴부랴 그렇지 않다는 취지로 해명에 나섰다. 시간이 갈수록 저가의 낡은 아파트가 멸실되고 고가의 새 아파트가 신규 공급되는데 아파트 중위가격을 기준으로 단순 비교하면 실제보다 과도하게 집값이 오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그러면서 서울 아파트 멸실량이 2010~2012년에 연평균 3000채 수준이었지만 2013~2016년에는 7000채로 늘었고, 2017~2019년에는 1만6000채로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비싼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중위가격이 크게 올라갔을 것이란 해명이다. 특히 최근 들어 고가 아파트 거래 비중이 늘어 중위 매매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게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제시한 2017년5월부터 올 5월까지 문재인 정부에서의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은 14.2%다.

국토부가 해명한대로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기준으로 다른 정부에서의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을 계산해보면 전반적인 흐름은 어떻게 해도 비슷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가격이 올랐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경실련이 분석한 또다른 통계는 그런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실련은 최저임금을 한 푼도 안쓰고 모아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산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38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3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43년이 걸린다는 계산도 내놨다. 중간소득층인 소득 4분위 계층이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사는데 걸리는 기간은 이명박 정부라면 13년, 박근혜 정부라면 15년, 문재인 정부라면 22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최저임금도 시간이 갈수록 올라가는데 그런 것을 보정하지 않아도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사실 노무현 정부 때도 서울 아파트 값 상승이 문재인 정부에 못지 않게 많이 올랐다. 경실련 분석에도 일부 나타나지만 노무현 정부라면 최저임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서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사려고 할 때 51년이 걸렸을 것이란 추산이다. 집값은 문재인 정부 들어 노무현 정부 때 보다도 더 오를 여지가 크지만 그나마 문재인 정부에선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바람에 구매 가능 기간이 43년으로 줄어든 것이다. 집값 자체의 상승만 따지면 두 정부가 자웅을 겨룰만한 수준이다.

이쯤 되면 참 이상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역대 정권 가운데 노무현·문재인 정부만큼 집값을 잡겠다고 신경을 썼던 때가 없으니 말이다. 이 두 정부 때만큼 중산층·서민을 위한 정책을 고안하기 위해 정책 당국이 집중한 적도 찾기 어렵다. 굵직한 부동산 정책을 쏟아낸 횟수도 노무현 정부 5년간 17회, 문재인 정부 3년여간 21회이니 그만큼 많은 정책을 융단폭격한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집값은 다른 정부에서 보다도 더 올랐다.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영국의 문인 새뮤얼 존슨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선한 의도로 추진하는 일들이 선한 결과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의도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선한 의도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 비일비재하다는 일침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정책은 의도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쓰게 되는데 대개 그 도구의 작동이 예상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행위자들이 손익 계산에 빠른 부동산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딜렘마도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어떤 행위가 의도와 완전히 반대되는 다른 결과를 낳는 사례는 많다. 지난 1996년 라이프지에 가족 생계를 위해 학교에 가지 않고 축구공을 꿰매는 12살 짜리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실린 적이 있다. 이 소년은 하루 종일 일해서 2달러도 안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이 라이프지에 실리자 세계인들은 공분해 나이키 불매운동이 펼쳐졌다.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가 학교에서 꿈을 키워야 할 소년들을 공장에 잡아두고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것에 분노한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제품 불매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축구공을 꿰매던 그 소년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귀결됐다. 의도는 선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던 셈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경실련의 분석은 현상 파악은 잘됐지만 원인 진단에서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원인으로 도시 뉴딜 정책으로 강남 구도심 집값 폭등, 임대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무모한 3기 신도시 추진, 삼성동.용산 개발사업 등을 들었다. 경실련은 또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청와대.국토부.기재부 고위 공무원 상당수가 다주택자라며 투기를 비호하는 관료들이 집값을 오르게 만들다가 이제 와서 잡는 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곧 수도권에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 주택 매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경실련의 지적은 일부는 일리가 있지만 모두 맞는 건 아니다. 주택정책자가 다주택자여서 투기를 옹호하다보니 집값을 폭등시켰다는 주장은 증거는 없이 정책을 계층 이해관계로 단순하게 치환한 억지 추정이다.무주택자가 주택정책을 하면 더 좋은 정책을 입안할 것이란 논리가 성립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이 주택시장은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한 방향의 정책은 의도치 않게 이익과 손해를 보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5억원 짜리 주택을 소유한 사람과 7억~8억원에 전세살이를 하는 사람 가운데 누구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야 할 것인가. 해법이 간단치 않다.

도시 뉴딜로 강남 구도심이 개선되면서 집값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을 것이란 분석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집값이 폭등했다기보다는 가격을 억누르려고 신규 아파트 분양가를 규제한 게 더 큰 여파를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청약시장에서 분양가를 억누르는 것이 기존 집값 상승을 제한할 것이라는 예상은 짧은 생각이다. 일시적 지연은 있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 전반의 가격 흐름에 따라서 새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재건축으로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분양가를 억누르는 것은 집값 차액을 조합원들이 가져 갈 것인가, 일반 분양을 받는 청약자들이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이지 집값을 잡느냐 못잡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가격의 직접적 규제는 그 의도가 선한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시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건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 통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베스 피에르는 서민들이 당시만해도 비쌌던 우유를 충분히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유 값 상한제를 실행했다고 한다. 우유 값은 강제로 낮춰졌고 낙농업자들은 기르던 젖소의 사료 값도 대지 못할 정도가 되자 젖소를 도축해 고기로 팔았다. 자연히 젖소가 부족해졌고 우유 공급은 더 줄어 우유는 암암리에 더 비싼 값에 거래됐다. 그러자 로베스 피에르는 젖소 사육을 늘려야겠다며 이번에는 사료 값을 강제로 낮췄다. 이제는 사료를 만들던 건초업자들이 수익성이 없어 건초를 불태우는 사태로 번졌다. 사료는 더 부족해졌고 젖소와 우유도 더 부족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결국 서민들이 우유를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하겠다던 로베스 피에르의 선의는 오히려 아기들이 마실 우유까지도 부족해지고 비싸지게 만들어 버렸다.

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에서 전세를 끼고 하는 주택 투기를 막겠다며 여러 가지 장치를 하자 오히려 시장에서 세입자들이 곡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재건축 조합원 자격을 취득하려면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워야 한다는 규제가 생기면서 집주인들은 빈집으로 두더라도 세입자를 내보내고 전입해야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 파편은 오롯이 세입자들이 떠안아야 할 판이다.

우리 나라에만 있다시피 한 전세제도가 무주택자들의 내집마련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살폈어야 하는데 정책 당국자가 거기까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갭투자라는 새로워 보이는 용어가 투기를 연상시켜서 그렇지 사실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가 조금씩 돈을 모아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국은 서민과 중산층 어느 쪽에 정책의 무게를 둘지조차도 명확하게 전략을 세우지 않은 채 우왕좌왕하다 결국 예상 못한 '풍선효과'가 나타나면 땜질식으로 처방하는데 급급한 상황이다. 결국에는 단기적으로는 주택 가격을 잡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끌어올리는 낭패를 거듭하고 있다. 굵직한 부동산 정책을 평균 2달에 한번씩 쏟아내는 당국이라면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주택정책 당국은 지금이라도 솔직히 그런 점을 인식하고 당장은 힘든 길이겠지만 획기적으로 공급을 확대하는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게 어떨까 싶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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