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간 외교적 판당고는 한국의 창작품,
한국 北비핵화 이해, 美 국가안보이익 무관"
아베 "김정은 믿지 말고 구체적 약속받아야"
싱가포르 종전선언안 "문 대통령 통일 의제"
볼턴 "종전선언 막으려 핵·미사일 신고 추진"
볼턴, 비건 하노이 초안 "양보 만 열거" 비토
트럼프, 김정은 "영변제안 수용땐 대선 패배"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DMZ 동행…북·미는 원치 않았다"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 확대회담에서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활짝 웃고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3일 발간하는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막기 위해 사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장에서 걸어 나오는 영상을 보여줬다라고 소개했다.[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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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 "김 위원장이 1년 내 비핵화를 하기로 합의했다"라고 전했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주장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반대로 "김정은을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23일 공식 출간할 예정인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에 적은 내용이다.
20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회고록에 따르면 볼턴 전 보좌관은 2018년 3월 대북 특사로 방북한 뒤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초청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 전달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나중에 '김 위원장에 미국에 먼저 정상회담을 초청하라고 제안한게 자신'이라고 '거의' 시인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외교적 판당고(스페인의 2인무)는 한국의 창작품”이라고 말했다. 북·미 비핵화 외교를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산물이라고 본 셈이다.
볼턴은 “김 위원장이나 우리의 진지한 전략보다 한국의 통일 의제에 더 관련됐다”“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국의 이해는 근본적인 미국 국가이익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며 부정적 인식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의용 실장에게 같은 해 4ㆍ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는 논의는 말라"고 요구했다고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하지만 판문점 회담 이튿날 4월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 "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포함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에 1년에 비핵화를 할 것을 요청했고, 김정은이 동의했다"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칭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대북외교를) 얼마나 많이 책임지고 있는지 밝혀달라" 졸랐다고 소개했다.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에서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의 "과도한 낙관적 관점"과 대조적으로 "김정은을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소개했다. "일본은 비핵화와 일본인 납치문제 모두 구체적이고, 모호하지 않은 약속을 원한다"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당신은 오바마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며 상기시켰다.
볼턴이 나중에 트럼프-문 대통령 통화를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이라고 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화를 듣던 중 심장마비가 왔다"고 응수하더라고도 소개했다.
볼턴은 문 대통령이 당시 남·북·미 3자 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다고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당초 회담을 판문점에서 한 뒤 후속 남·북·미 3자 회담을 갖자고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하자 물러섰다고 했다. 미국은 이미 스위스 제네바와 싱가포르를 최적의 장소로 검토할 때였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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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5월 22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3자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 동참하길 원했고, 심지어 6월11일 회담 전날까지 오고 싶어했다고 소개했다. 볼턴은 "문 대통령이 2019년 6월 말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때처럼 사진 행사에 끼어들길 원했다"고도 했다.
이런 구상을 무산시킨 것은 북한이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해 "이건 북·미 회담"이라며 "남한은 필요없다"라고 잘라 말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참가를 싫어하며 3자 회담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는 게 트럼프-김영철 회동의 "유일한 좋은 소식이었다"고 볼턴은 평했다.
볼턴은 싱가포르 종전선언도 "원래는 북한의 아이디어인 줄 알았는 데 문 대통령의 통일 의제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일주일 전까지 한국전쟁 종식 선언을 "언론의 점수를 딸 기회"라고 생각해 빠져 있었다고 했다. 볼턴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종전선언 대가로 북한의 핵·탄도미사일의 신고를 공동성명에 포함하는 안을 마련했다. 결국 종전선언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빠지도록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먼저 "문 대통령에게 군사훈련 문제를 제기하니 오로지 미국의 결정에 달렸다고 하더라"며 훈련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은 도발적이고 시간과 돈 낭비"라며 "결코 동의하지 않는 (미국) 장군들은 무시하고 협상하는 동안은 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미국에 많은 돈을 절약해줬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김정은은 활짝 미소를 지었고 동석한 김영철 부위원장과 껄껄 웃기도 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은 실무협상 없이 6개월여 교착상태에 빠졌다. 모든 핵·탄도미사일 신고 요구 때문이었다. 7월 6~7일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이 후속조치로 신고를 요구하자 북한은 "일방적이고 강도 같은 요구"라고 반발했고,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볼턴은 자신이 폼페이오 장관에 북한이 기본적인 신고를 할 때까지 진지한 협상을 시작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며, 신고는 북한의 비핵화 약속의 진실성과 협상의 선의를 시험할 조치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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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트럼프에 86년 레이건 회담장 박찬 레이캬비크 영상 틀어줘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이틀간 핵 감축협상을 벌인 뒤 합의없이 회담장을 떠났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하노이 준비회의에서 이 회담 영상을 트럼프에 보여줬다고 공개했다.[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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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부위원장의 이듬해 1월 17~18일 워싱턴 방문으로 확정된 2차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때 볼턴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만든 합의문 초안을 보이콧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하노이로 가는 도중 앨리슨 후커 NSC 한반도담당 보좌관에 초안을 받아보고는 "트럼프의 사전 양보만 열거해놓고 대가로 북한은 또 다른 모호한 비핵화 성명만 넣은 것"이라고 혹평했다. 폼페이오가 왜 이런 문안을 허락했는지 완전한 미스터리라고도 하면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스티븐 밀러 정책보좌관에 연락해 채택하지 못하도록 사전 작업까지 했다.
그는 비건 대표의 앞서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점진적 접근을 밝힌 데 "국무부 협상가가 합의에 대한 열의와 홍보에 너무 도취돼 통제 불능에 빠졌다"고 불만을 적기도 했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에서 예기치 않은 못한 양보를 막기위해 준비회의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6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회담장을 걸어나온게 결국 소련이 중단거리 핵무기금지(INF) 협정 합의를 이끌었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볼턴의 의도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영상을 본 뒤 "내가 유리한 입장이니 서둘 필요가 없다"며 "회담장을 걸어나갈 수 있다"고 말해 크게 안도했다고도 소개했다.
볼턴은 폼페이오에게도 하노이 협상에서 기본 신고를 재차 강조하고 왜 경제제재를 포기해선 안 되는지를 강조했고, 폼페이오는 자신의 영역을 간섭하는 데 발끈했지만 내용엔 반대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2월 28일 회담은 결국 볼턴의 의도대로 나쁜 합의대신 무산으로 결론났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전날 "비건의 문안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지나치다(too much)"라며 실무협상팀 초안을 거부했다. 마이클 코언 변호사 청문회를 보느라 밤을 새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인 메트로폴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스몰딜과 걸어나가는 것 중 뭐가 더 기사거리가 되겠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해체 대가로 2016년 이후 채택된 유엔 제재 해제를 요구한 김 위원장에 볼턴이 준비한 비핵화의 정의와 북한의 밝은 미래를 정리한 2쪽짜리 문서를 건넸다. 회담은 영변 이외 추가로 내놓을 것이 없는지 묻는 트럼프 대통령과 영변이 북한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김 위원장 간 같은 문답이 반복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에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제거를 할 수 있겠느냐고도 제안했다. 볼턴은 이에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 신고부터 필요하다"라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한걸음씩 가면 궁극적으로 전체 그림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안보에 대한 어떤 법률적 보장도 얻지 못했다"며 "미 군함이 북한 영해에 진입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존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북한은 물론 미국도 문 대통령이 참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 공개했다.[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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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만약 영변-제재 해제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에선 정치적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며 "자신은 대선에 패배할 수도 있다"고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이 마지막까지 합의가 없더라도 '하노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를 원했지만 이마저도 없이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은 결렬로 막을 내렸다.
볼턴은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과 판문점 회동에서 미국은 물론 북한 모두 문 대통령이 끼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에 앞서 양자회담에서 자신이 판문점에 동행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자신과 만나기를 부탁했지만 문 대통령이 DMZ에 함께 가서 만나는 게 문 대통령에 좋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끼어들어 "북한과 합의한 건 트럼프-김 양자 만의 회동"이라고 했고 볼턴도 폼페이오 편을 들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도 "함께 만날지 아닐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회동이 가장 중요한 문제지만 김 위원장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내가 현장에 없는 것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하지만 "어젯밤 문 대통령 생각을 전달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고 다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도 참석하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청에 따르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미국 대통령이 DMZ를 방문한 건 여러 번이지만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함께 가는 건 처음"이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말할 게 있기 때문에 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은 서울에서 배웅한 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오산에서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판문점 인근 오울렛 초소까지 동행한 뒤 거기서 다음은 결정하자"고 조르자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수용했다고 했다.
워싱턴=임종주·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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