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관가에서는 가뜩이나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고될 정도로 얼어붙은 국내 경기가 이날 발표된 부동산 규제로 인해 더욱 가라앉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답답함이 김 차관의 침묵으로 표출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날 발표된 규제로 서울 등 부동산 규제지역의 주택 거래가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과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정치적 슬로건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향하는 경제정책의 목표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미(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이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손병두(왼쪽)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함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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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 봉쇄 부동산 대책…"작년 3분기 성장률 쇼크 반복되나"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녹실회의에서 확정된 ‘주택시장 안정 방안’에 따르면, 서울 등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3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전세자금대출 보증이 제한된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구입하는 이른바 ‘갭 투자’를 원천 봉쇄한 것이다.
용인 수지와 수원, 안양 등 수도권에서 집값 상승이 관측된 17개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경기·인천·대전·청주 등 수도권 대부분 지역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잠실 마이스(MICE) 개발,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이 추진되는 서울 잠실, 삼성, 대치, 청담동 일대는 토지거래허가제가 도입된다.
정부는 코로나 대응을 위한 각종 금융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많이 풀린 상황이기 때문에 규제를 하지 않으면 집값 상승을 막을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역대 최저 수준의 금리와 급격히 증가하는 유동자금이 주택 시장으로 재유입되면서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방에서 과열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면서 "늘어난 유동성이 주택시장 투기 수요로 연결되지 않도록 불안요인을 해소하고,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택시장 과열 요인을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부동산 대책이 집값 안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위축된 내수 경기를 더욱 움츠려 들게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작년 3분기의 경우 정부가 분양가상한제 확대 방침을 정한 이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0.4%(이하 전기비)로 뚝 떨어진 바 있다.
정부가 지난해 8월 분양가 상한제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이후, 작년 3분기 건설투자는 전기대비 6.0% 감소하는 후폭풍을 겪어야 했다. 서울 강남 등의 주요 재건축 단지의 아파트 사업이 정부 정책으로 멈춰섰기 때문이다. 건설투자 위축은 작년 1분기 마이너스(-0.4%) 성장을 딛고 2분기 1.0%까지 올라온 국내 성장률을 다시 0%초반으로 후퇴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건설투자 회복 지연될 듯… "정부 정책이 경기에 역행"
시장에서는 이번 규제로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 경기가 더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정부 대책 중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내 모든 주택 거래에 자금조달계획서와 증빙 자료 신고를 의무화한 것은 부동산 거래 절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거래 급감은 이사, 도배, 인테리어 등 자영업자의 생계와 연결되는 서비스의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규제로 부동산 거래가 줄면, 이에 연동된 건설 투자 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출범 후 건설투자는 2018년부터 계속 마이너스 상태다. 한은은 올해 건설투자가 2.2% 감소하고, 내년에는 0.8%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내년 하반기쯤에야 건설투자가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번 규제로 건설사들의 아파트 사업이 연기될 경우 건설경기 회복 시기는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기획재정부 등에서는 부동산 규제 수위를 무조건 올리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이었지만, ‘부동산과의 전쟁에서 질 수 없다’는 청와대 및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정무적 판단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민간 경제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급격한 경기 위축을 막기 위해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는데, 정작 정부는 서민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집값 안정에 경기활성화라는 경제정책 목표가 후순위로 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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