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다즈 매장. /셔터스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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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직장인 조모(31)씨는 지난달 28일 재난지원금 40만원을 받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평소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던 조씨는 지원금이 입금되자 편의점으로 향했다. 늘 먹던 500원짜리 ‘탱크보이’ 대신 2만 5000원짜리 ‘하겐다즈 하프갤런’을 집어들었다. 이튿날엔 인근 배스킨라빈스에 들러 5가지 맛으로 구성된 패밀리 사이즈(2만 2000원) 아이스크림을 한 통 샀다. 남은 지원금 액수는 35만원. 조씨는 다음 소비 품목을 고민했다. 최근 LP 음반에 푹 빠진 조씨는 며칠 뒤 동대문 근처 중고 레코드 샵에 들렀다. 평소 구매하던 2만~3만원짜리 ‘국산 음반’ 대신 1969년 발매됐다는 7만원짜리 ‘수입 음반’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수입 음반을 집어든 조씨는 “재난지원금으로 소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며 기뻐했다. 조씨는 이를 ‘소확사(소소하지만 확실한 사치)’라고 불렀다.
지난달 중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젊은 층에 ‘합리적 사치’가 유행하고 있다. 비싼 명품이나 낯선 물건에 지원금을 ‘탕진’하기보다 소박한 지출로 작은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지난달 13일부터 31일까지 나뚜루·하겐다즈 등 고급 아이스크림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17.2%, 전월동기대비 26.8% 상승했다.
이런 경향은 소셜미디어의 ‘재난지원금 인증샷’에서도 드러난다. 인스타그램에 ‘#재난지원금’이란 해시 태그로 검색되는 3만여 개 게시물은 대부분 비슷하다. “성년의 날을 맞아 친구들에게 향수를 선물해줬다”, “동네 곱창집에 가서 평소 먹고 싶던 낙곱새(낙지·곱창·새우를 넣고 끓인 음식)를 먹고 왔다”는 식이다. ‘명품을 샀다’며 자랑하는 경우도 품목은 소소하다. “과일계의 샤넬, 샤인머스캣을 질렀다”, “믹스 커피만 먹다가 스페셜티 커피(고급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마셔봤다”고 자랑한다. 실제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커피앳웍스’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소셜미디어 태그 수가 2배 정도 늘었다”며 “매출 역시 전년동기대비 1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평소 소비 성향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턱대고 사치재를 지르지 않는 건 이들 세대의 소비 패턴도 보수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코로나로 해고되거나 월급이 끊기는 사례를 접하면서 미래 재정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30 세대는 재난지원금으로 고가의 의류보다 생필품, 음식 등을 우선으로 구입하고 있다”며 “사치재는 못 사지만 평소 누리고 싶었던 라이프 스타일을 살짝이라도 맛보고 싶어 ‘작은 사치’를 부리는 게 이런 소비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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