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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회장님과 스포츠-2] 정몽원 회장의 아이스하키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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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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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지난 2월 국제아이스하키 연맹(IIHF) 명예의 전당 헌액자에 선정됐다. 정몽원 회장의 IIHF 명예의 전당 입성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으로는 다섯번째다.

명예의 전당은 세계 아이스하키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공을 올린 아이스하키인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대상은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당대 최고로 꼽혔던 선수와 아이하키 발전에 공로가 큰 행정가다. 올해 명예의 전당에 선정된 6명 중 정몽원 회장을 뺀 5명은 모두 아이스하키 선수다.

단순히 경기력이 좋고 인기가 많은 스타라고 해서 뽑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을 만큼의 무언가가 쌓여 있어야 한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람은 지금까지 230명에 불과하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이스하키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인 셈이다.

IIHF는 정 회장이 대한민국과 아시아 아이스하키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이스하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아이스하키의 평창올림픽 출전을 가능하게 했다. 아이스하키는 개최국 자동출전권이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이후 없어진 종목이다. 아울러 2018년 세계선수권대회 톱 디비전(1부리그 격) 진출이라는 기적까지 일구어 냈다. 한국의 아이스하키 등록선수는 2017년 기준 2500여명에 불과하다. 캐나다 65만여명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고, 일본만해도 2만명이 넘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12개국만이 출전할 수 있는 톱 디비전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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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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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회장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한라그룹 부회장에 취임해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책임지게 된 그는 그룹 주력 만도의 성장을 위해서 고민하던 중, 94년 아이스하키 창단이라는 결단을 내리게 됐다. 냉각공조가 주력사업인 만도와 빙판은 이미지가 어울렸다. 만도 이전에 쌍방울이 실업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하긴 했지만, 아이스하키는 스포츠 매니아들에게도 낯선 종목이었다. 야구나 축구팀을 창단·운영하는 것과는 비교 대상이 안됐다.

서울고와 고려대, 미국 USC(남가주대)를 나온 정 회장 이력은 귀족적인 이미지의 아이스하키와 일견 잘 어울린다. 그래서 그의 아이스하키 사랑에 대해 세간의 평가가 고운 것만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선수로서 아이스하키를 즐기던 부자집 도련님이 자신의 취미 생활을 재력을 통해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오해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정 회장은 선수 출신도 아니고, 취미로 아이스하키를 즐기지도 않았다. 그의 아이스하키 입문은 만도가 팀을 창단한 30대 후반이다.

요새 말로 정 회장의 아이스하키 '입덕'은 늦은 셈이다. 하지만 늦게 빠져든 아이스하키 매력은 강렬했다. 아이스하키도 사업도 잘나갔다. 만도 아이스하키팀은 1995~1996, 1996~1997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한라그룹 재계 순위는 12위까지 올랐다. 마침내 1998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하며 꿈에 그리던 우승 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라는 IMF 구제금융의 직격탄을 맞고, 그룹의 주력 관계사인 만도 등을 매각하며 공중분해 된다.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한라에 남은 건 한라건설과 일부 소규모 법인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스하키단은 지켰다. 쌍방울과 동원 등 다른 아이스하키팀들이 줄줄이 해체됐다. 하지만 안양 한라는 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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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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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회장은 IMF이후 10년간 뼈를 깍는 고통과 함께 절치부심한다. 그리고 2008년 만도를 인수에 성공한다. '재계의 부도옹(不倒翁·오뚝이)' 이라는 별명으로 아들과 함께 그룹의 재건을 위해 휠체어로 출장을 다니던 부친 고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은 2년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2008년은 경사가 겹친다. 아시아리그 정규리그에서 한라가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한다. 아시아리그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클럽이 참가하는 대회다. 그간 한라를 비롯한 한국 팀들은 일본 팀들의 들러리 신세였다. 하지만 정 회장과 한라그룹은 외국인 선수 영입 등 물심양면으로 팀을 지원했고, 마침내 2008년 그 결실을 맺었다.

이 때의 경험은 또 다시 10년 뒤, 세계선수권 탑디비전 진출과 평창올림픽 선전의 밑거름이 된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외국인 귀화선수가 많다. 평창올림픽 엔트리 25명 중 7명이 '파라 눈'을 가진 국가 대표 선수다. 이 때문에 외부의 곱지 않는 시선도 있었다. 다른 동계 종목들의 외국인 선수 귀화 러시에 불을 지핀 원흉이 아이스하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같은 오해는 아이스하키의 시스템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대부분 오직 올림픽만을 위해 귀화선수를 영입한 다른 종목들과 달리 아이스하키는 꽤 오랜 숙성기간이 있었다. 대부분 선수들이 한라를 비롯한 국내 팀에서 상당기간 뛴 선수들이다. 게다가 베스트라인업으로만 운영되는 다른 종목과 달리 아이스하키는 엔트리에 속한 대부분 선수들이 4개 라인으로 구성돼 경기에서 돌아가며 출전한다. 또한 아이스하키계에서 귀화를 통한 전력강화는 흔한 일이다. 르레 파젤 IIHF회장이 한국 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귀화선수 영입을 권유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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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며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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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양적인 귀화만 이루어진다고 해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화학적 결합도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은 2013년부터 대한아이스하키 협회를 이끌고 있는 정몽원 회장이 담당했다. 외국인선수를 일찌감치 영입하고, 귀화시킨 덕에 국내선수 경기력도 꾸준히 상승했다. 세계선수권 탑디비전 진출 당시에 한국팀이 기록한 14득점 중 11득점을 국내선수들이 해냈다.

2020년은 정몽원 회장에게 여러의미에서 특별한 해다. 부친 고 정인영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이며, 비경기인 출신의 IIHF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는 영광도 얻었다. 정인영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릅 창업주 첫째 동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라를 둘러싼 안팎의 상항은 녹록치 않다. 코로나19 팬더믹은 한라그룹에도 악재다.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대한민국 아이스하키는 위축되고 있다. 국내에 남은 아이스하키팀은 대명과 한라, 하이원 단 3팀에 불과하다. 게다가 강릉아이스링크 활용을 포함해 정 회장이 아이스하키 협회장으로서 챙겨야 될 일도 산더미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준비와 경험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며, 그 핵심에는 아이스하키 속도처럼 빠른 의사결정이 있다. IMF 이후 그룹 재건에 성공한 한라그룹과 정몽원 회장은 위기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했다. 그룹 지주사 한라홀딩스는 코로나 위기정국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올해 1분기 영업이익(173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순이익은 120% 늘었다. 한라그룹은 공정자산 기준 재계 51위 기업집단이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은 7조7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5월 만도는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순찰 로봇이 정보통신기술(ICT)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 자율주행 순찰 로봇의 이름은 '골리(Goalie)'다. 아이스하키 골키퍼 포지션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이스하키계에서 정몽원 회장의 애칭 또한 '숨은 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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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아이스하키 대표팀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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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회장은 "'배움은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 나아가지 못하면 후퇴하게 된다 (學如逆水行舟, 不進則退)'라는 말이 있다"며 "대한민국 아이스하키는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고 치러낼 때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고, 도전 정신을 잃지 않아야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하키협회 이사진엔 재계 인사들도 다수 포함돼있다. 허준홍 삼양통상 사장을 비롯해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 박태진 JP모건 한국총괄 대표, 박정림 KB증권 대표 등이 아이스하키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승환 재계·한상 전문기자 / 도움 = 정지규 경일대 스포츠학과 교수 겸 스포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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