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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한자→한글→한자→다시 한글로?… 광화문 현판은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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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시민모임 “한글로 달자” 주장

“'門化光(문화광)'이라고 쓴 지금의 한자 현판 대신 세종대왕이 경복궁에서 창제한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 서체로 현판을 만들어 새로 달자.”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자는 주장을 내놨다. 이들은 왜 광화문 현판을 바꾸자는 것일까?

조선일보

(작은 사진) 2010년 새로 단 지 3개월 만에 금이 간 광화문 현판. 흰색 바탕에 검정 한자로 적혀 있다. (큰 사진) 검정 바탕에 금색 한글로 교체했을 때 광화문 현판 모습. 축소 현판 제작 후 합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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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 반영해야" vs "문화재는 복원이 우선"

시민모임 공동 대표인 강병인 멋글씨 작가(캘리그래퍼)는 "지금의 광화문 현판은 우리의 모습을 담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 우리 얼굴, 우리 이미지를 다시 만든다면 한자가 아닌 한글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현판을 써야 하는지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않기 위해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용한 훈민정음체를 써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천안문광장의 현판은 간체로 썼고, 모택동의 초상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그게 지금 중국의 상징이 됐습니다. 광화문은 국민이 모이는 광장 기능을 하고 있고, 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다 찾는 곳인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담아야죠. 게다가 한글이 만들어진 장소인데 현판이 한자라니요."

시민모임의 주장에 문화재청은 바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인류 문화의 자산인 문화재 복원에 우리 시대의 가치와 시대정신이 투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재 복원은 역사성이 중요하고, 당시 한자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우리 문화의 주체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광화문은 고종 중건(1865년) 당시를 기준으로 복원했기 때문에, 현판 또한 복원 기준에 따라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현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화문 현판, 예전엔 한글이었다?

숭례문이나 대한문 현판에 대해선 이런 논란이 없는데 왜 광화문 현판 갖고만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다른 현판에 비해 광화문 현판의 역사는 수난사(史)라고 해도 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됐고, 1425년(세종 7년)에야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지었다.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려서 당시에 현판을 누가 썼는지 현재 알 길이 없다.

현재 광화문에 걸린 한자 현판은 1865년(고종 2년) 광화문을 중건(重建)하면서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것을 복원한 것이다. 시민모임은 "어차피 임태영이 쓴 것도 원본은 아니다. 게다가 작은 흑백 사진을 보고 복원한 임태영의 글씨에선 기운생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 원로 서예가 김영기(73)씨는 "임태영의 글씨엔 아무 문제가 없다. 추사 김정희나 한석봉 글씨를 갖다놔도 광화문 현판에 어울릴 것이란 보장이 없다. 멀리서도 잘 보이게 썼기 때문에 현판 글씨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한 번도 안 걸렸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임태영이 쓴 현판이 소실됐고,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이 걸렸다. 이후에 문화재청이 1868년 중건한 광화문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하면서 2010년 8월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門化光' 현판을 내걸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현판이 갈라져서 다시 제작에 들어갔다. 그때 한글 단체를 중심으로 "한글 현판을 달자"는 주장이 나왔다.

한글 현판 얘기가 1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은 올해 광화문 현판을 또 바꿔 달기 때문이다. 2010년에 복원한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다. 이후 사료(史料)와 사진을 연구한 결과, 원래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8월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를 검은 바탕에 황금빛 동판 글씨를 새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새로 제작한 현판은 이미 한자로 새겼고, 색칠하는 단계를 남겨놓고 있다. 올해 말 현판을 교체할 예정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한글 현판으로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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