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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지평선] 좀비ㆍ암, 그리고 금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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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해 당론 위배를 이유로 징계 조치를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금 전 의원이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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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회찬 의원은 17대 초선 당시 국회 법사위에서 힘겹고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 대부분 판검사나 법대 교수 출신 등 각종 인연으로 얽혀 있는데 노 의원만 비법조인이었던 터였다. 본인이 지원한 게 아니라 당세가 약해 남은 자리에 강제 배정받은 게 법사위였다. 특유의 소신과 원칙으로 맹활약해 국감 우수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결국 법사위 활동이 발목을 잡았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을 폭로하고 의원직을 박탈당한 것도 법사위가 아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 여야 대립의 최전선인 법사위는 의원들의 기피 1순위로 알려져 있다. 모든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을 심의해 ‘상원’에 비유될 정도로 입김이 세지만 일거리만 많고 상대당과 피 말리는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법사위 활동을 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민주당 회의에서 “법사위 있는 동안 ‘암 걸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법사위는 따로 그날 회의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신문에 헤드라인 나온 거 쭉 훑어보고 공격 포인트 잡은 다음, 그거 갖고 하루 종일 싸우는 게 소기의 역할”이라고 법사위의 맨 얼굴을 내보였다.

□ 4ㆍ15 총선에서 나란히 불출마 선언을 한 표창원ㆍ이철희 전 민주당 의원도 모두 법사위 소속이었다. 표 전 의원은 “가장 극단적 언행을 동원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내 모습이 좀비가 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 전 의원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게 솔직한 고백”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공정과 정의의 기준에 위배된 행위를 감싸야 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컸다. 소신을 밝히지 못하고 당 입장을 변호해야 하는 법사위의 특성이 정치에 대한 환멸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 민주당 당론을 어기고 공수처법 표결 때 기권표를 던져 징계 처분을 받은 금태섭 전 의원도 어찌 보면 법사위의 ‘희생양’이다. 국회의원 되기 전부터의 소신을 표명한 것이 의원직을 잃는 계기가 됐고 징계까지 덧씌워졌다. 그는 후배 검사들로부터도 검경 수사권 조정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배신자 취급을 받아 왔다. 이번 총선에 당선된 법조인 출신 의원이 역대 최대인 46명인데, 그중 70%인 초ㆍ재선 가운데 상당수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전선에 뛰어들기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암과 좀비, 배신자라는 덫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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