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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비행기는 못날고, 내 마일리지만 날렸다...부글부글 소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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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한 전 세계 항공편 마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마일리지 사용 문제를 놓고 항공사와 소비자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마일리지는 사용 기간이 제한돼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가지 못하면 자연스레 마일리지가 소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피해 사례도 나오고 있다. A씨는 지난해 말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이용해 올해 9월 스페인에 다녀오는 왕복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자 예약 취소를 고려하고 있다. A씨는 “스페인에 입국해서 14일간, 한국에 돌아와서 14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여행을 할 수 있느냐”면서 “여행 취소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공사에 관련 절차를 문의하던 중 예약을 취소하면 3000마일리지가 소멸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A씨는 “2009년에 쌓은 마일리지가 사용 기한 10년을 넘겨 올해부터는 쓸 수 없기 때문에 예약을 취소하면 해당 마일리지는 사라진다는 설명이었다”면서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재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약을 취소하는 것인데 항공사가 이 규정을 원칙대로 적용하는 것은 소비자에게는 너무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지난 4월 인천공항 주기장에 항공기들이 늘어서 있다./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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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마일리지 사용 기한 연장해달라”

소비자와 항공사의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소비자들은 “코로나로 사실상 전 세계 여행 자체가 올스톱한 상태이기 때문에 마일리지 사용 기한을 1년 이상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항공사들은 “기한 내에 마일리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마일리지 소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또 A씨의 경우처럼 승객의 결정으로 예약을 취소했다면 사용 기한이 도래한 마일리지는 소멸될 수 밖에 없다고 항공사들은 밝혔다.

이 같은 갈등의 원인은 마일리지 사용에 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2008년 7월 이전에 적립한 마일리지는 기간 제한 없이 쓸 수 있지만, 2008년 7월부터 적립한 마일리지는 10년 안에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에 따라 2008년 7~12월에 적립한 마일리지는 2019년 1월1일 오전0시에 소멸됐고, 2009년에 적립한 마일리지도 올해 1월1일 오전0시에 소멸됐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에는 2008년 10월 이전에 적립한 마일리지는 사용 기간 제한이 없고 2008년 10월부터 적립한 마일리지는 우수 회원 등급에 따라 10~12년으로 사용 기한을 정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발생하면서 마일리지 사용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마일리지가 소멸되기 전인 지난해에 미리 올해 비행 예정인 티켓을 구매했는데 취소할 경우 마일리지가 사라지거나, 코로나 때문에 올해 여행이 아예 불가능해 마일리지로 티켓을 예약할 수 있는 기한이 줄어드는 경우 등이다. 직장인 김모(39)씨는 “10년간 적립한 마일리지로 올해 유럽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티켓 구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해가 바뀌면 1만 마일리지 이상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현실적으로 여행이 불가능한데 마일리지 정책을 문구대로 적용을 하는 것은 항공사의 횡포”라면서 “마일리지도 재산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4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가 발생한 지난 1월20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운항 중단, 일정 변경, 마일리지 사용 문제 등 항공 관련 피해 신고는 1243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접수된 피해 신고는 313건이었다.

항공사 “마일리지 연장할 여유 없어”

이에 대해 항공사들은 “항공사가 결정해 운항을 중단한 경우에는 소멸된 마일리지라도 전액 환불을 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즉 A씨의 경우 만약 대한항공이 9월 스페인 비행편 운항을 중단한다면 3000 마일리지가 소멸되지 않고, 올해 말까지 이 마일리지를 이용해 새로 예약할 수 있다. 예약 가능한 비행편 일정은 내년 9월까지다.

또한 항공사들은 마일리지 사용 기한을 10년으로 충분히 제공했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외국 항공사들에 비해 우리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사용 기한도 긴 편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루프트한자, 일본항공(JAL), 싱가포르항공의 사용 기한은 3년이다. 다만 미국 유나이티드항공과 델타항공은 사용 기간에 제한이 없다. 항공사들은 상품 구매, 렌터카 사용, 숙박 예약, 영화관 이용 등 마일리지 대체 사용처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마일리지로 상품을 구매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대부분 좌석 업그레이드나 비행기표 예약에 쓰기 위해 마일리지를 적립한다”고 반박한다.

이처럼 승객들의 불만이 높은데도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사용 기한 연장에 주저하는 것은 유동성 위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코로나 이후 항공사들의 매출이 80% 이상 급감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정부로부터 각각 1조2000억원, 1조7000억원을 지원받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당장 생존자금도 부족한 항공사들이 부채로 계산되는 마일리지까지 연장해 줄 여유가 없을 것”이라면서 “대한항공은 마일리지로 쌓여 있는 부채가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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