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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영화 리뷰] `프랑스여자`…재능 있는 소설가들이 왜 표절 시비에 휘말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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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문인들이 연거푸 표절 시비에 휘말린 해가 있었다. 독창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예술가들이었다. 팬들은 왜 그토록 창의적인 인물이 남의 문장을 훔쳐 썼는지 의아해했다.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기에 사죄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혹시 그들은 너무 많은 글을 읽어 머릿속에 저장된 글귀가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렇게 해명한 이도 있었다.

'프랑스여자'는 남의 것과 쉽게 섞여 버리는 우리 인생을 그린 영화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남의 것을 도용하는 아티스트처럼, 타인의 말과 생각에 쉬이 물드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를 싫어하면서도 그들을 닮아버린 자식,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은 방식 그대로 남을 해하고 있는 가해자를 위한 변명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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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유학 갔던 미라(가운데)가 잠시 귀국하며 옛 친구들이 모인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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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프랑스 파리에 유학 갔던 미라(김호정)가 오랜만에 서울을 찾으며 시작된다. 20년 전 배우를 꿈꾸며 유럽으로 건너 간 그는 통역가로 살고 있다. 프랑스인 남편이 외도를 한 바람에 그와는 이혼했다.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가진 못했지만, 크게 실패하거나 좌절한 적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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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가운데)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친구들은 20년 전 그때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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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반기러 모인 영화감독 친구 영은(김지영), 연극 연출가인 후배 성우(김영민)는 따뜻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상상을 뒤섞어버린다. 미라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영은과 성우가 20년 전 청년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미라는 중년의 주름살 그대로지만, 친구들 눈에는 20년 전 미라로 비치는 듯하다. 그리고 미라는 어린 성우와 키스한다. 성우가 또 다른 친구 해란(류아벨)과 사귀는 사이임을 알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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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남편과 강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미라. 이것은 정말 미라의 기억일까?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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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89분짜리 남의 꿈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한 맥락으로 이어진다. 미라의 꿈에선 피해의식과 죄의식이 미묘하게 전환된다. 그는 분명 프랑스인 남편에게 뒤통수 맞았지만, 20년 전엔 해란의 남자친구와 감정을 나눠 친구를 아프게 했다. 젊은 시절 해란 마음을 찢었던 미라의 어휘는 프랑스인 남편 입에서 반복되며 자신의 가슴에 상처를 입힌다.

기억을 돌이킬수록 발화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불분명해진다. 우리는 싫든 좋든 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영화는 강조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격언을 이미지로 풀어낸 영화 같다. 가장 창의적이란 칭찬을 듣는 사람에게 '겸손하라'는 이야기로 다가갈 것이다. 표절 논란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이에게는 '누구든 마찬가지다'라는 토닥임이 된다.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관객에겐 '너도 그렇게까지 착하지만은 않다'는 객관화로, 죄책감에 고통 받는 관객에겐 '당신도 충분히 많은 생채기가 있다'는 달램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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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미라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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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간이 자꾸 뒤섞이는데도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건 주연 김호정이 중심을 잡고 있어서다. '우생순' 김지영, '부부의 세계' 김영민도 흔들리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롱테이크가 많음에도 각 장면이 꽉 짜인 연극처럼 시선을 붙든다. 연출을 맡은 김희정 감독은 '열세살, 수아'(2007), '설행_눈길을 걷다'(2016)로 주요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아티스트다. 이번에도 감각적인 영상 위에 인물 심리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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