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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수컷 공작의 꽁지가 암컷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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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라이언 신간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숨겨진 선호' 이론으로 성적 미학 탐구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공작의 깃털을 볼 때마다 속이 불편해져"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생존에 유리한 개체의 형질이 후대에 이어진다는 것이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인데 수공작의 꽁지는 도대체 생존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은 결국 자연선택론을 보충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즉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론을 내놓는다. 암컷의 짝짓기 상대로 선택받는 데 도움이 되는 형질이 후대에 이어져 진화의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꽁지가 왜 암컷의 눈에는 매력적으로 보이는지에 관한 설명이 없다면 이 이론은 '번식을 잘하니 후손이 많다'는 당연한 이야기에 불과하게 된다. 미국 텍사스대 석좌교수 마이클 라이언의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원제 A Taste for the Beautiful·빈티지하우스)는 다윈은 물론 그 뒤를 이은 많은 생물학자에게 난제였던 이 문제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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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를 활짝 편 수공작
[EPA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저자는 파나마 바로콜로라도섬의 퉁가라개구리에서 케냐의 하트코박쥐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다양한 동물들이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지켜봤고 때로는 암컷이 무엇에 유혹됐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뇌를 해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존 연구자들이 동물들의 성선택에 관해 수행한 많은 연구 결과를 검토했다. 그를 통해 저자가 내린 결론의 핵심은 동물, 특히 암컷의 뇌에 수컷의 특정 요소를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성향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숨겨진 선호' 이론이다.

'숨겨진 선호'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친척뻘 물고기인 플래티와 소드테일의 사례를 제시한다. 수컷 소드테일은 '칼(sword) 꼬리(tail)'라는 이름과 같이 꼬리에서 뻗어 나오는 긴 검(劍)이 있으며 이것이 길수록 암컷에게 매력적으로 인식된다. 근연종인 플래티는 이것이 없지만, 연구자들이 일부 수컷에게 '가짜 검'을 붙여놓고 관찰했더니 암컷들은 검이 달린 수컷을 짝짓기 상대로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암컷 플래티가 검이 달린 수컷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도 한눈에 반한 것은 뇌에 이미 그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숨겨져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숨겨진 선호'는 왜 생기는 것일까. 저자도 강조했듯이 특정한 형질을 선호하는 뇌의 작용은 한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든 동물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대칭에 대한 선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이 대칭을 선호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대칭이 완벽한 개체가 건강하고 생존에 유리해 더 많은 자손에게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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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의 짝짓기
[EPA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저자는 동물의 뇌가 대칭을 선호하는 것은 사물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속성이라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 비대칭 패턴을 무작위로 모아 평균을 내면 대칭이 발생한다는 '프로토타입 형성 이론'을 든다. 사람들의 양쪽 다리 길이가 완벽하게 같은 경우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긴 것이 오른쪽일 확률과 왼쪽일 확률은 비슷하기 때문에 다리 길이 차이의 평균은 0에 수렴하게 되며, 우리는 양쪽 다리 길이가 같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찌르레기, 닭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물론 심지어 인공신경망 실험에서도 대칭을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숨겨진 선호'가 짝짓기와 관계없는 영역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갈색 먹이가 대부분이었던 호수의 환경이 변해 붉은색 먹이가 더 많아진다면 붉은색을 잘 가려낼 수 있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해진다. 붉은색을 잘 가려내는 암컷의 뇌에는 붉은색에 대한 선호가 자리 잡았을 것이고 온통 검은색이던 수컷들 가운데 붉은색 깃털을 지닌 개체가 등장한다면 짝짓기 상대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숨겨진 선호'는 잠재적으로 진화적 가치가 있는 형질을 즉각 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시간상 이점을 안겨주기도 한다. 특정한 형질이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그 형질을 갖추게 진화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그사이 도태될 확률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번도 보지 못한 짝짓기 상대가 지닌 형질의 가치를 판단하느라 시간을 들이다 보면 또 다른 위험이 초래될 수도 있다. 저자는 "가장 안전한 섹스는 가장 빠른 섹스"라는 말로 이를 요약한다.

'숨겨진 선호'의 실체와 그 발현 과정에는 아직도 더 설명돼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연구가 진척되면 진화의 비밀을 규명하는 데는 물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역사 이래로 철학자들의 주된 탐구 대상인 '진선미' 가운데 가장 이론 체계를 세우기 어려웠던 아름다움의 문제가 철학이 아닌 과학, 그중에서도 뇌과학의 영역으로 옮겨가게 될지 모른다.

박단비 옮김. 34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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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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