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신작 '철도원 삼대' 펴내
/이진한 기자 |
1989년 방북한 소설가 황석영(77·사진)은 당시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을 만났다고 한다. 일흔 넘어 서울말을 쓰는 부지배인이 신기해 고향을 물었더니 서울 영등포라 했다. 영등포는 황석영 가족이 월남해 정착한 곳이자 유소년기를 보낸 공간이었다. 동향의 노인은 영등포 철도공작창에 다니던 아버지와 철도 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던 자신, 그리고 역시 기관수가 된 아들까지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황석영은 30년 전 평양에서 만난 노인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소설 '철도원 삼대'를 완성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전후, 21세기까지 4대에 걸친 산업노동자들 이야기를 담았다. 2일 열린 간담회에서 황석영은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를 지금의 현실로 끌고 오기 위해 4대째 노동자인 이진오라는 인물을 만들었다"고 했다. 근대 산업사회의 상징과도 같았던 철도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 백여 년의 이야기가 민담처럼 펼쳐진다. "굴뚝은 지상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공간이다. 그곳에서 일상이 멈춰 있으니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 4대째 후손이 과거의 증조부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들락날락하도록 소설을 구상했다."
황석영은 "그동안 대하소설조차 농민 위주였기 때문에 산업노동자의 삶을 전면적으로 다룬 장편이 없어 그 공백을 채워넣고 싶었다"면서 "대부분이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도 노동을 그린 소설은 금기시됐다"고 했다. 그는 '철도원 삼대'가 염상섭의 소설 '삼대'의 뒤를 잇는 작품이라고 했다.
지난주 예정됐던 간담회가 늦잠으로 취소됐다는 기사가 뜻밖의 홍보가 됐다. 출간 1주일도 안 돼 초판 1만부가 다 팔리고 증쇄에 들어갔다. 이날 정시에 맞춰 도착한 황석영은 "헛걸음하게 해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광주에 행사를 갔다가 막걸리 한잔했습니다. 조선 술이 어찌나 끈기가 센 지 술이 안 깨서…."
황석영은 "장길산 쓰는 동안 19번을 옮겨 다녔고, 이번 소설도 하루 8~10시간씩 앉아서 작품을 썼다"면서 "기운이 달리고 기억력도 떨어져 많이 고생했다"고 했다. 요즘은 코로나 이후의 문명을 고민 중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여태까지 잘 살아온 게 맞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면서 "그에 응답하는 작품을 써보려 한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