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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경기부양 급했다지만…기후위기 전략 빠진 ’무늬만’ 그린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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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표 그린뉴딜 뜯어보니]

탈탄소 에너지전환 목표·계획 없이

온실가스 감축 기존사업 열거 그쳐

“코로나 극복 뉴딜에 끼워넣기” 비판

정부 발표 그린뉴딜과 배치 내용도

항공·조선·자동차 등 지원 밝히며

저탄소 산업 유인 조건도 안달아

정의당, 재정투입 규모 확대 요구


한겨레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21대 국회 기후위기와 불평등 극복 요구 기자회견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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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1일 한국판 뉴딜의 한 축으로 발표한 ‘그린 뉴딜’의 밑그림을 두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목표와 에너지 전환 전략이 부재했다는 평이 나온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사회·경제 전 분야의 개혁이 기대됐지만, 기존에 추진되던 개별 사업을 열거한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그린 뉴딜을 한국형 뉴딜의 ‘들러리’로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 정책은 ‘도시·공간·생활 인프라의 녹색 전환’ ‘녹색산업의 혁신 생태계 구축’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등 3개 과제에 2022년까지 12조9천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고 일자리 13만3천개를 만든다는 것이 뼈대다. 어린이집·보건소 등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스마트 그린도시 조성, 녹색산업단지 조성 등의 구체적인 사업들이 포함됐다. 지난달 12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대통령의 언급으로 시작된 그린 뉴딜의 정부 구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그린 뉴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환경·에너지 전문가들은 우선, “기후위기 대응 목표와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배출 중립(넷제로·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선언 등 탈탄소 사회로 가기 위한 계획이 담기는 대신에, 서둘러 경기부양책을 만드는 데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기후변화 대응력 제고를 위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 강화”를 하겠다면서도 감축 목표는 기존 목표(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 감축)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미 70여개국이 선언한 ‘2050년 이전 탄소배출 중립 달성 계획’에 대해서도 올해 안에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수립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유상할당 강화나 배출권 거래에 제3자가 참여하는 방안 등은 지난해 말 수립된 3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석탄발전을 줄이겠다고 한 방침 역시 “2040년이 돼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30~35%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독일의 경우 2030년 65%가 목표다.

한국판 뉴딜의 밑그림을 짠 기획재정부 쪽은 목표 설정은 사회적 논의가 더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담당자는 “디지털 뉴딜과 마찬가지로 그린 뉴딜은 한국형 뉴딜의 하나로 경기 부양이 최우선 과제였다. 넷제로 등의 목표 설정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이번 정책은 탈탄소 사회로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정부의 방향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기존 목표를 그대로 둔 채 이행 점검을 잘하겠다는 취지인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탈탄소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밝힌 지원 방안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부합하지 않거나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항공·조선·자동차 등 석유·석탄 기반의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 지원을 밝히면서 고용안정 조건 외에 저탄소 산업으로 유인할 ‘기후 조건’을 달지 않았다. 유럽에선 항공산업에 재정 지원을 하면서 기차와 같은 대체 교통수단이 있는 국내선 축소 등의 온실가스 감축 조건을 달았다. 녹색금융에 대한 ‘환경책임투자’ 가이드라인 마련도 약속했지만 재정 지원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환경단체들이 주장해온 국책은행의 석탄발전 투자를 검증하는 정책도 빠졌다. 정부안 수립 과정에 깊이 참여한 한 전문가는 “저탄소, 에너지 효율 등 ‘그린’이 모든 재정 투자 지원의 기준이 돼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한 국난 극복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그린’은 끼워넣기식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기재부 담당자는 “당장 숨넘어간다는 기업에 고용 안정 외에 환경 조건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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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중장기적 제도 개선을 통해 기업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운영”하겠다고 한 것도 그린 뉴딜의 취지와는 배치된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기업의 책임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지언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장은 “부문별 배출권 할당 방식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제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수립된 3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에 따른 부문별 할당계획은 7월 말께 수립될 예정이다. 이에 안세창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은 “배출권 유상할당 자금을 활용해 기업에 재정·기술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있겠지만, 규제 완화 차원에서 협의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재정 투입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정의당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3%인 20조~60조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의당은 1일 논평을 내어 “저탄소 녹색성장 당시 재정 투자 계획이 5년 동안 107조원에 이르렀다. 이번 그린 뉴딜 계획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고 비판했다.

최우리 김정수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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