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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김세형 칼럼] 文대통령 탈원전 근거라는 전력예비율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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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상춘재에서 오찬을 마친 후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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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전력예비율이 30%나 되므로 원전을 더 지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8일 청와대 미팅에서 주호영 통합미래당 원내대표가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탈원전을 재고해달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에 주호영 원내대표는 더 이상 반론을 말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원전을 더 짓는 데 반대한 ’예비율 30%’의 논리는 국민이 절로 고개를 끄덕일 모범답안은 아니다. 지금 한전에 OECD 주요국의 전력예비율을 조사해보면 그 이유가 당장에 드러난다. 전력예비율이라 함은 평소 전력발전능력이 평균 사용량에 비해 얼마나 여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예비율이 30.6%라는 문 대통령의 답변은 정확하다. 기자회견 등에서 언제 질문을 받을지 몰라 잘 외워둔 모양이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미국 41.4%, 프랑스 50.3%, 일본 108.8%, 이탈리아 113.1%, 독일 154.6%다. 세계 각국이 예비율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산업구조나 한낮과 밤중이 다르고, 특히 무더위나 혹한기에 냉난방을 해야 하므로 이때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30% 예비율을 갖고 있지만 살인적인 무더위가 오면 한여름철 7~8%로 간당간당하고 자칫 5%이하로 떨어지면 전국에 블랙아웃(blackout)이라는 정전 사태가 날 수 있다. 이럴 조짐이 보이면 큰 공장에 제한송전을 하거나 명동 매장에 문을 열고 장사를 하면 벌금을 매기겠다는 엄포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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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월정리 신재생에너지 연구기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해수담수화시스템 /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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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국가 가운데 독일의 전력예비율이 154%나 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메르켈 총리는 2011년 탈원전정책에 동의하고 원자력 가동을 6기로 줄이면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의 비율을 높였다. 그런데 자연에 의존하는 바람과 태양광은 발전능력이 불안정하다. 급한 나머지 석탄발전소를 잔뜩 지어 지금 예비율은 저렇게 높으나 다시 이산화탄소 배출은 늘고 전기료는 30% 이상 올려 엉망이 돼버렸다는 기사가 작년 FT에 실려 읽은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도 그런 유형이고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동안 탈원전으로 가려다 작년에 유턴했다. 미국은 98기, 프랑스는 57기 한국은 24기의 원전을 돌리면서 안정적인 공급을 해주니 예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낮아도 되는 이치이다. 전력예비율이 30%나 되니 신규 원전을 안 지어도 되는 논리적 근거로 누군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 그는 유능한 참모는 아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독일·이탈리아·스위스처럼 탈원전으로 가는 곳도 있고, 미국·일본 처럼 일시정지하다 재개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국가발전단계상 중국처럼 추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나라도 있다. 그것은 국민의 합의에 의한 선택이다.

결단을 내릴 때는 그 나라만이 안고 있는 장단점을 냉정하게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독일, 스위스처럼 전력이 부족하면 이웃나라에서 얼마나 사올 수 있는가도 중요 변수인데 한국은 그 점에서 섬(island)과 같다는 팩트를 망각하면 안 된다. 또한 한국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기 전 아랍에미리트에 원전 4기를 수출할 정도로 기술 면에서 세계 톱(top)을 달려 전 세계 430기의 원전 건설이 검토되는 상황을 잘 활용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며 전기차나 데이터처리 등 높은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북한과 개성공단을 다시 돌리기로 한다거나 접경지역 공단을 늘리면 그 전기는 모두 남한이 대야 함을 물론 계산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후쿠시마형 원전만 해도 사고에 취약했으나 현재 한국형 모델인 APR1400은 미국 안전기준에도 유일하게 통과할 정도로 전 세계에 팔아먹기 용이하다.

문 대통령이 김태년, 주호영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기 하루 전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국민의 원자력 의식을 조사해 발표했다. 응답률을 보면 원전 비중을 유지 또는 확대해야 한다는 답변은 58%, 축소 28%로 나타났다. 문재인정부는 취임 첫해인 10월 24일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을 거쳤다며 국무회의에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를 서둘러 방망이 쳐버렸다. 그 후 원자력학회는 3개월마다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한번도 예외 없이 원전비중 유지 또는 확대가 70%, 축소가 25% 안팎으로 나오고 있다.

막무가내식 탈원전으로 전력요금 인상( 2030년까지 30%), 세계시장에서 신규 원전 발주 낙오, LNG 등으로 대체에 따른 비용 증가를 감안하면 길게 보면 1000조원까지 손해 보게 된다는 전문가 칼럼도 검색해보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탈원전을 결정한 과정이 정당했는가를 다시 검증할 필요성을 느낀다.

정부가 제시하는 법적 근거는 2017년 7월 17일 국무총리 훈령으로 제정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든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여 3개월 동안 471명의 위원과 더불어 낸 결론은 "신고리 5, 6호 건설을 계속하라"는 거였다. 문정부의 핵심 이념파들은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는 떡을 하나 줬다. '부가적 권고사항'이라면서 "향후 원전을 축소하라"는 '권고'를 슬쩍 급조한 것이다. 이 훈령의 원래 제목을 다시 한번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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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책에 공사가 잠정 중단된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5·6호기 현장. /사진=한국수력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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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세워둔 신고리 5, 6호 건설을 재개할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하라는 거였다. 그랬으면 '건설 재개' 한 가지로 끝냈어야 했다. 그리고 향후 원전 건설에 대한 공론회의 투표 내용도 숙의 과정 전에는 51대46으로 원전비중 유지 및 확대가 축소를 5%포인트 앞섰다.

그런데 숙의 과정 후 신고리 5, 6호 건설 재개에 대한 찬성이 45%에서 57%로 되레 12%포인트 올라가면서 위원들이 미안한 마음으로 원전 확대 쪽이 축소 쪽으로 몇 명 이동해 45대53으로 역전됐다. 단 한번 원전 축소가 8%포인트 높게 나왔던 것이다. 문정부 이념파들은 여기서 "유레카!"라고 드높이 외쳤을지 모른다. 신고리 5, 6호 재개를 반대한 공론화위원들에게 변칙으로 원전 확대 vs 축소라는 훨씬 더 큰 거대담론을 표결케 하면서 그 이전에는 찬성률이 높았던 것을 동정심리로 안팎 4%가 움직인 것으로 탈원전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것을 재빨리 10월 20일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하고 10월 24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의 초월적 논거로 채택한 것이다.

이 과정의 철차적 타당성에 동의하는가? 세계10위권, 5100만 국민의 운명을 결정할 근거로는 너무 빈약하지 않나? 미국의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역사상 1, 2위로 추앙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해 자신이 틀렸으면 금방 고쳤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국민이 대통령의 존재를 자부심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탈원전 결정 과정이 뭔가에 휘둘렸다. 그것은 장차 국민이나 국가에 큰 비용을 치르게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더 '깊은 뜻'을 갖고 있다면 단순히 예비율 30%를 말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탈원전은 차기 정권이면 무조건 바뀔 것이란 전망도 무성하다. 국민 모두가 수긍할 기준이 필요하다. 나는 대만, 스위스처럼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본다. 차기 대선이나 지자체 선거에 표결에 부쳐도 될 것이다.

[김세형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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