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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목멱칼럼]억울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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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현대중공업이 정의기억연대의 볼멘소리를 들었다. 10억 원을 기부 받았는데 그 돈으로는 서울 쪽에 쉼터를 장만하기에 부족했다는 것, 그래서 안성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여론은 정의기억연대의 투명성을 요구하는데 정의기억연대는 오히려 현대중공업 탓을
이데일리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래도 기업이라 현대중공업은 억울함을 참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도 기부금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멀리는 일해재단으로부터 최근에는 미르, K스포츠재단까지. 좋은 뜻으로 기부하고도 고발당하고 심지어는 구속까지 되는 일이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군가가 나서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왜 기업은 항상 억울함을 씹고만 있어야 되는지 고민해야 할 텐데 아직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익법인을 둘러싼 스캔들을 막을 수는 없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의 몇 분의 일이라도 예방과 대책에 쏟는다면 공익법인의 순기능을 살려 공동체가 발전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기부자로서 기업들의 자부심도 살리고 시민운동가들의 명예도 드높일 수 있다.

우선 제도적 보완책이다. 공익법인은 대개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이나 시민들로부터 받는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활동가들은 정의, 평화, 복지, 평등과도 같은 좋은 의미를 내세워 보조금을 받고 기부금을 모금한다. 처음에는 취지에 따라 열심히 하는데 어느새 그 돈에 주인이 없어진다. 돈을 준 정부나 기부자들은 활동가들을 신뢰하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지 않게 된다. 눈먼 돈이 생기니 공익법인의 운영자인 활동가들은 마음이 변한다.

기부금이나 보조금 모두 세금이나 마찬가지다. 기부금은 좋은 곳에 쓰라고 정부가 가져가야 할 세금을 민간에 유보시켜 준 것이다. 기부금에 세금감면이란 혜택을 주는 이유다. 지난해 15조 원 가량의 기부금이 걷혔는데 이는 평균 세율 15%로 가정하면 2조 원 이상의 세금을 정부가 가져가지 않고 민간에 넘겨준 것이다. 결국 기부금이 본래의 취지로 제대로 쓰였느냐를 감시하는 것은 기부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조세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현재 자산 100억 원, 수익 50억 원, 기부금 20억 원 이상으로 돼 있는 외부회계감사 의무대상은 전면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정의기억연대의 경우 외부의 전문 회계 법인으로부터 꾸준히 감사를 받아 보조금이나 기부금을 투명하게 관리해 왔더라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리는 정의기억연대나 윤미향 전 대표의 활동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인데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도적 미비가 한 개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 단체가 표방해 온 숭고한 가치까지 깎아내리게 만들었다.

제도적 장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부자들의 자기 권리 찾기다. 분노하고 궐기하는 것만이 기부자들의 할 일은 아니다. 이번 정의기억연대도 그 투명성을 기부자들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가이드스타의 홈페이지에 들어와 NPO 검색 메뉴를 찾아 클릭 몇 번만 했다면 외부감사를 받지 않은 단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 기부자들은 본성적으로 따뜻한 반면 치밀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법인 기부자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기업에 소홀함과 게으름은 배임이나 마찬가지다. 모금단체의 투명성을 따져야 한다. 차제에 정부의 보조금이나 기업의 기부금 지출 시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짚고 넘어가도록 의무화 할 것을 제안한다. 외부감사의 이행은 기본이고 모금비용과 사업비용의 비율, 사회적 물의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점검해 보조금과 기부금의 산정, 지출에 필수적 사항으로 산입되도록 하자. 기업의 신용평가 보고서와 같은 투명성 리포트 같은 것을 공익법인에 도입해 줄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강제할 것이 아니라 문화로 정착돼야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도 업그레이드 될 것이고 공익법인의 순기능이 최대한 발현돼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회계 투명성은 진영의 논리가 아니다. 운동가들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도 투명성 리포트를 참고해 기부를 할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면 옥석이 시장에서 자연스레 걸러지고 건전한 기부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의 억울함도 그때쯤이면 속 시원하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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