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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민족사 ‘진실’ 찾아낸 한평생 ‘시대의 역사’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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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님 영전에

한겨레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영결식에서 공동 장례위원장인 이낙연 전 총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1990년대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시절부터 고인과 인연을 맺어왔다. 사진 장례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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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후학들은 이제야 후회합니다.

생전의 최서면 선생님께 더 많이 배웠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민족의 진로를, 한일관계의 숨은 진실과 바람직한 발전방향을 더 배웠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했던 것이 한스럽습니다.

선생님이 계셨던 것은 우리 민족의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활동으로 민족은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생전의 선생님께 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후회합니다.

선생님은 아흔 네 해 평생을 현역으로 사셨습니다. 한 사람이 이루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을 혼자서 해 내셨습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둠에 묻혔을 수많은 역사가 선생님의 집념으로 햇빛을 보았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기’를 우리가 되찾아올 수 있던 것은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옥중수기도, 독도가 그려진 옛 지도도 선생님의 노력으로 우리가 볼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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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의 가족·사회장이 28일 오전 8시 서울성모병원 영결식장에서 진행됐다. 왼쪽 둘째부터 부인 김혜정 교수, 공동 장례위원장 이낙연·김황식 전 총리. 사진 장례위원회 제공


선생님은 대의를 실현하고자 파란만장한 삶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이승만정권의 박해를 피해 청년기부터 30년을 일본에서 사셨고, 그 뒤 30여년을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셨습니다. 해방 정국에는 좌우를 넘어 당대의 거물들과 폭넓게 만나며 민족통합을 실현하려 하셨습니다. 그 뒤에는 한·일 두 나라 지도자들과 깊게 교류하며 양국 관계의 바람직한 정립을 위해 진력하셨습니다. 한·일 두 나라를 밥 먹듯이 숱하게 오가며 역사의 진실을 찾으셨고, 그 사료들을 후학들에게 나눠주며 기뻐하셨습니다.

많은 경우에 선생님은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일을 도우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가리켜 누군가는 ‘막후의 실력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막을 치고 일한 적이 없다”며 호탕하게 웃어 넘기곤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한일외교의 괴물’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표현으로 가둘 수 없는, 한 시대의 엄연한 역사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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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은 지난달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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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서면(아우구스틴) 국제한국연구원장의 삼우제가 지난달 31일 경기도 파주 천주교 하늘묘원에서 진행됐다. 사진 장례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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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꿈을 이루고자 생애를 불태우셨습니다. 선생님은 많은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이루지 못하신 꿈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민족통합은 미완성입니다. 한일관계의 진정한 정립도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꿈을 후학들의 숙제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부족한 후학들이 그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못난 후학들은 선생님을 결코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칼칼한 음성, 호방한 웃음, 거침없는 질타, 상상을 넘는 유머, 그 모든 것이 선생님의 생애와 함께 후학들의 삶에 고스란히 남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평생 누리지 못하셨던 안식을 이제부터라도 영원히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낙연/공동장례위원장·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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