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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뚝딱뚝딱…장난감 고쳐주는 공학도 할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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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천 미추홀구 주안시민지하상가의 `키니스 장난감병원`에서 김종일 이사장이 장난감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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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만화 '꼬마의사 맥스터핀스'에는 장난감을 진찰하고 아픈 곳을 고쳐주는 꼬마 의사가 나온다. 바로 맥스터핀스다. 몸이 고장 난 장난감들이 겁에 질려 맥스터핀스를 찾아오면, 이 꼬마 의사는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고 아픈 곳을 찾아 말끔하게 고쳐준다.

만화에나 존재할 법한 장난감병원이 실존할까. 그렇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시민지하상가에 있는 '키니스 장난감병원'이 그 주인공이다. 꼬마 의사 대신 공학도 출신 할아버지 의사들이 아픈 장난감을 진찰하고 고쳐준다. 병원비는 무료다. 9년째 무료로 아이들의 장난감을 고쳐주는 김종일 키니스 장난감병원 이사장(74)을 지난달 21일 장난감병원에서 만났다.

"공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머리가 단순해요. 답이 나오면 바로 실행에 옮기죠. 실험도 해보고 죽어라고 논문도 썼는데 못할 게 어디 있어요. 퇴직 후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2011년에 만들었죠." 인하공업전문대 교수 출신 김 이사장이 동료 교수, 대학 동기 등과 의기투합해 만든 키니스 장난감병원에서는 65세 이상 총 8명의 실버 인력이 어린이 장난감을 무료로 수리해준다. '키니스(kinis)'는 어린이를 의미하는 '키드(kid)'와 노인을 뜻하는 '실버(silver)'를 섞어 만든 이름으로, 장난감을 '아프다'고 표현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병원이라고 부른다. 지난 9년간 이곳에서 매년 약 1만개 장난감이 치료를 받았다.

9년 동안 가장 많이 수리한 장난감은 모빌이다. 수리한 장난감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타이니러브 모빌 알죠? 그걸 제일 많이 고쳤어요. 그거 없으면 엄마들이 밥도 못 먹잖아요. 애들이 태어나 눈을 뜨고 일어설 때까지 쓰는 모빌인데, 모빌이 접수되면 모빌부터 고쳐 보내줘요. 그래야 엄마들이 밥을 먹을 거 아니에요." 김 이사장은 본인만큼 장난감을 잘 아는 할아버지가 우리나라에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모빌, 에듀볼, 국민대문, 걸음마 보조기 등 연령별로 필요한 장난감을 줄줄이 꿰고 있다.

정부 지원 없이 개인들의 기부로 운영되다 보니 돈을 벌기는커녕 운영비가 부족해 때론 사비를 지출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왜 9년째 장난감병원을 운영하고 있을까. 아이들 때문이다. "수리된 장난감을 들고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릴 때 보람을 느끼죠. 장난감을 고치러 방문한 아이들에게 다른 장난감을 선물할 때도 행복하고요. 장난감을 받은 아이들 중 찡그리는 꼬마는 없거든요."

의뢰인이 왕복 택배비만 부담하면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주는 까닭에 병원 앞은 전국 각지에서 온 택배 상자들이 넘쳐났다. 인터뷰 도중에도 택배 상자 13개가 배달됐다. 수리를 기다리는 장난감들이다.

"병원을 운영하며 장난감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는 것을 느껴요. 택배를 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물려받거나 중고로 산 장난감을 어떻게든 고쳐서 쓰려는 사람들이에요. 장난감만 봐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손을 거쳤는지 알 수 있죠. 반면 기부받은 장난감을 보면 미니카 수백 개가 든 상자를 세 박스나 보내주시는데 대부분 새것이죠."

아이들이 자신의 연령에 맞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정서상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는 김 이사장은 매년 1만여 개 장난감을 수리하는 동시에 1만여 개 장난감을 기증한다. 개인이나 완구공업협동조합 등에서 기부를 받아 이를 다시 미혼모 가정 등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냐"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장난감병원을 서울, 부산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켜 은퇴한 분들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 내에서 장난감 기부와 기증이 활발히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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