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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브로커 1명 끼고 3일 실사뒤 수천억 빅딜…`깜깜이` 해외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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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더 M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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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브로커 A씨는 최근 수년간 10여 채의 부동산을 국내 증권사에 팔았다. 증권사들은 A씨의 소개로 수천억 원대 부동산을 매입해 국내에서 펀드를 조성하고, 기관 및 개인투자자에게 팔거나 자체 투자분으로 보유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A씨가 아는 현지 법무법인, 감정평가법인, 회계법인의 보고서를 토대로 자체 투자심의위원회를 통과시켰다. 국내 증권사 대부분은 출장을 가서 직접 현지 실사를 했지만 '2박 3일'이나 '3박 4일' 등 사실상 위치를 확인하는 일종의 관광 수준에 불과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 실사와 투자가 진행되었든 글로벌 경기가 좋아져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수년 뒤 높은 가격에 매도해 투자자들이 수익을 나눠 가지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며 "다만 그 투자 과정이 지금처럼 허술하게 진행되는 것을 안다면 가만히 둬선 안 될 일"이라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외 유명 증권·운용사들은 현지 실사를 3~6개월간 수십억 원을 들여서 하는데, 국내 증권사들은 딜소싱과 실적에 매달려 사흘 정도 다녀와 거래가 성립된다"며 "단순히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 보다 투명한 듀딜리전스의 모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해외 부동산 검사에 착수한 배경은 단순히 투자금이 56조원 규모로 급증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십조 원을 투자하는 대형 금융사의 투자 절차가 불투명하고 부실한 내부 통제를 거치는 탓에 지뢰와 같은 블랙스완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경계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매년 10조원가량 투자되던 해외 부동산 투자금은 지난해 15조원에 육박했다. 누적 금액은 56조5913억원에 달한다. 투자금이 증가하는 만큼 리스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척도가 될 수 있는 셀다운(재매각) 실패 금액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8개 증권사의 해외 대체투자 자산은 2017년 3조7000억원에서 2019년 상반기 13조9000억원으로 278% 급증했다. 증권사가 해외 자산을 매입하는 것은 지분 셀다운을 통해 수수료를 받고 기관투자가나 개인투자자에게 매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증권사 자신이 해당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해외에서 사들이기는 했지만 국내 다른 투자자한테 이를 매각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의미다. 기대수익률이 투자자의 눈을 충족하지 못했다거나 투자 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한신평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셀다운 목적의 자산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유동성 대응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신평은 또 해외 대체투자에 대해 △불투명성 위험 △유동성 위험 △신용집중 위험 △수익성 위험 등을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했다. 해외 자산은 실사가 어려운 탓에 당장의 리스크 파악이 어렵고 환급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셀다운에 실패한 자산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구나 최근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미국과 유럽 선진국을 거쳐 동유럽, 아시아 신흥국 등으로 지역이 확대되면서 리스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선진국과 달리 외국인 투자 관련 법 체계가 정비되지 않은 곳에서는 소위 사기를 당할 위험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서는 대체투자 재간접펀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에서 해외 유명 운용사의 대체투자 펀드를 재간접 형태로 추종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같은 경우도 이름만 믿고 투자에 나서기보다 가능한 범위에서 실사를 통해 상품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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