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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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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에…간송미술관 신라 불상 2점 경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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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금동여래입상. [사진 제공 = 케이옥션]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 강점기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 1만여 점을 구입해 지킨 '문화재 수호자'였다. 1938년에는 한국 최초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을 지어 문화재를 소중히 보관해왔다. 간송이 세상을 떠난 후 장남 전성우(1934~2018), 차남 전영우(80), 장손 전인건 씨(49) 등이 3대에 걸쳐 그 유지를 받들고 있다.

국민의 추앙을 받던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을 경매에 내놨다. 케이옥션은 오는 27일 5월 경매에 불상 2점을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출품한다고 밝혔다.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공식적으로 미술품 경매에 나온 것은 개관 82년 만에 처음이다.

1963년 보물 제284호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은 7세기 중반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 영향을 받은 당나라 양식을 따랐으며 이전보다 표정이 근엄해졌다. 부분적으로 도금이 마멸됐으나 육계(머리)부터 대좌까지 완전에 가까운 잔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뚜렷한 나발(부처의 머리털)이 나타나며, 부처의 상호(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이다. 이마는 좁고 눈은 옆으로 길고 크며, 코와 입은 작다. 살짝 오무린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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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보살입상. [사진 제공 = 케이옥션]


케이옥션 관계자는 "출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높이 38cm로 우리나라에서 동 시기에 제작된 금동불상으로서는 드물게 크다"고 설명했다.

금동여래입상과 같은해 보물 제285호로 지정된 금동보살입상은 현재까지 유일한 신라 지역 출토 불상이다. 6~7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봉보주보살상과 일본 초기 불상 영향을 받았다. 보살이 취한 손을 앞으로 모아 보주(寶珠·보배로운 구슬)를 받들어 올린 모습과 양 옆으로 뻗은 지느러미 같은 옷자락은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호류사 구세관음(救世觀音)과 유사하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신라의 옛 땅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봉보주보살상은 거창에서 출토된 이 불상이 현재까지 유일하다"고 밝혔다.

한편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1일 보물로 지정된 불상 두 점을 매각하게 돼 안타깝고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단은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에서 "2013년 공익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 이후, 대중적인 전시와 문화 사업들을 병행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해 재정적인 압박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으나 적절한 방안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여기에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장남인 전성우 전 재단 이사장 별세로 추가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국세청과 문화재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개인의 배려와 도움을 받았으나 소장품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재단은 부연했다. 재단은 "결국 소장품 매각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돼 송구한 마음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또한 "불가피하게 소장하고 있는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고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을 상징해온 서화와 도자, 그리고 전적이라는 중심축에 더욱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향후 2~3년에 걸쳐 간송미술관 다목적 수장고 건립 등 시설을 대폭 개선하고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제2의 도약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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