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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5·18 외신기자 회고…"거리의 시신들, 지금도 악몽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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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취재 1호 기자' 정태원 당시 UPI 기자 회고록

회고록의 시작은 "광주시민들은 폭도가 아니었다"

"정치에 눈이 멀어 죄 없고 양 같은 착한 백성들을"

"자위권 발동?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데 왜 쏴죽여"

"타지 학생 시체 마음 아파…하숙 주인 수습하기도"

"시민이 폭도? 전두환이 폭도…이제라도 사죄해야"

뉴시스

[서울=뉴시스]5·18 민주화운동 당시 정태원 UPI통신사 사진기자(81·로이터통신 전 사진부장)가 직접 작성한 회고록. 하단에 "광주 계엄사 작전실 게시판에는 광주 시위대를 적으로 표시돼(하고) 있었으며"라는 내용이 보인다.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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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5·18민주화운동이 18일로 40주년을 맞이했다. 한국 근대사에서 굵직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이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광주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만행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뉴시스는 당시 외신기자 신분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생생하게 취재했던 정태원 당시 UPI통신사 사진기자(81·로이터통신 전 사진부장)의 회고록을 입수했다. 정 기자는 한국 민주화 역사의 산 증인으로 광주 현장을 1호 기자로 취재했을 뿐만 아니라 1987년 쓰러진 채 부축받고 있는 이한열 열사를 찍어 6월 항쟁에도 불을 붙인 바 있다.

그가 기억을 잃기 전, 후대에 알리기 위해 지난 2018년~2019년께 작성했다는 원고지 31매 분량의 회고록을 통해 당시 광주 현장의 모습과 현재 5·18운동이 갖는 의미를 짚어봤다.

◇"계엄사 게시판, 시민을 '적'으로 표현"

정 기자는 광주시민들과 계엄군이 한창 대치 중이던 1980년 5월20일부터 전남도청에서의 학살이 벌어진 같은달 27일까지 매일 광주와 서울을 왕복하며 취재를 벌였다.

회고록의 첫 일성(一聲)은 "광주 시위대는 폭도가 아니었다.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은 공산주의나 간첩이 결코 아니었다"이다.

이어 그는 "국토 방위나 백성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어떻게 감히 이 나라의 정치에 눈이 멀어서 죄 없고 양 같은 착하고 착한 백성들을 마구 잡아 가두고 고문하여 허위 자백을 받아내며 심하게 구타하여 죽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양심도 없고 부모형제도 없단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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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5·18 민주화운동 당시 정태원 UPI통신사 사진기자(81·로이터통신 전 사진부장)가 직접 작성한 회고록. 상단에 "적 사살 몇명이라고 똑똑히 쓰여져 있었고 국방부 출입기자가 '적'이란 표현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며 항의하니 그 후에는 '폭도들'로 표시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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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기자는 "자위권 발동- 좋아하지 말라! 계엄군들이. 무차별 구타, 연행, 감금, 고문, 정조준 사격가지(까지) 하면서 겨우 이유는 폭도들이기 때문에-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은 우리 모두가 다아(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데 왜 쏴 죽여- 왜 때려죽여!"라고도 적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울 때 쏘라고 미주에서 원조해준 그 무시무시한 M-16 최신 자동소총과 장갑차(APC)와 탱크. 왜 같은 민족이요 동포인 광주 시위대에게 쏴!"라며 "군정부에서 입에 침이 마르게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 하며 우리는 백의 민족이며 한 핏줄이요 형제자매라 하면서, 광주 시위대는 아니 시민과 학생들은 우리들의 민족도 아니며 형제 자매도 아니며 우주에서 온 순악한 폭도였단 말인가"라고 했다.

회고록에는 당시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적'이라고 표현했었다고 돼 있다. 정 기자의 기억이 맞다면 광주 시민들에 대한 계엄군의 태도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정 기자는 "광주 계엄사 작전실 게시판에는 광주 시위대를 적으로 표시돼(표시하고) 있었으며- 적 사살 몇명이라고 똑..히(똑똑히) 쓰여져 있었고. 국방부 출입기자가 '적'이란 표현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며 항의하니 그 후에는 '폭도들'로 표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광주역에서부터 급탄포-그리고 도청 앞까지 누가 누굴 먼저 죽였는가?"라고 반문했다.

◇손수레 위 시신…끌고 가는 노부부에 "손주?" 묻자 "하숙생"

외신기자의 취재는 허락됐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진입 과정조차 매우 위험했다는 게 정 기자의 회상이다. 그는 광주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터널 안 어둠 속에 탱크가 2대 감춰져 있었다고 기억했다. 한번은 육군 대위가 통행을 허락했는데 더 낮은 계급인 중사가 총을 빼들고 막는 등 군 질서가 엉망이었다는 것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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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정태원 UPI통신사 사진기자(81·로이터통신 전 사진부장). 2019.05.18. radiohea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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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기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헬기사격 등을 부인하고 있지만)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군이 자체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지 못 했다. 지휘관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정황이 크다"고 증언했다.

정 기자와 같은 외신기자들은 산에 택시를 숨겨둔 후 광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몰래 이들의 차를 타고 취재 현장으로 향했다. 그를 안내하던 학생들도 팔·다리가 뒤로 묶인 채 콘트리트에 머리를 박고 살해됐다는 말을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뒤 뒤늦게야 정 기자는 전해들었다. 그들은 정 기자가 광주로 돌아올 때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반가워 했었다고 한다.

정 기자는 "계엄군은 자수고 뭐고 살아움직이는 건 무조건 다 쏴 죽였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에서는 현지에서 지휘관이 상황에 따라 대처를 하라고 했다지만 그건 다 헛소리"라며 "다 죽이라는 명령이 위에서 내려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숱한 죽음의 고비보다도 정 기자에게는 더 고통스럽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아들 또래의 학생들의 시신이 거리에 즐비한 모습, 그 모습이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떠오른다고 한다. 정 기자는 아직도 종종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정 기자에 따르면 당시 서해안 인근의 섬에서 살던 학생들이 공부하기 위해 광주로 '유학'을 많이 왔다고 떠올렸다. 타향만리에서 부모도 모르게 죽어간 이들의 시신은 며칠이고 찾아가는 이 없이 널브러져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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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태원 당시 UPI통신사 사진기자(81·로이터통신 전 사진부장)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촬영해 외신 뉴욕타임스에 실린 사진.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20.05.17. (제공=정태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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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정 기자가 광주 망월동에서 시체의 두 발이 삐져나온 손수레를 끌고 터덜터덜 가고 있는 한 노부부를 보고 "손주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노부부는 "하숙생"이라고 대답했다.

정 기자는 "아카시아 꽃이 피고 딸기가 나는 따뜻한 계절에, 시신이 부패해가면서 보다 못한 이들이 수습해 간 것"이라며 "소식도 모르고 공부하러 간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들이 아마 시신도 끝내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폭도는 전두환이다"

이 같은 소식은 광주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이른바 '땡전뉴스'로 불리며 언론을 장악한 군부독재정권이 광주에 '폭도'가 일어났으며 죽은 사람도, 집단발포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며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정 기자와 같은 외신기자들은 광주에 갈 수 없던 국내 언론인들에게 어둠 속에서 새어나오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정 기자는 당시 사진송고를 위해 매일 같이 서울에 올라왔는데, 기자들의 요청으로 광주의 상황을 브리핑 해줬다고 한다.

그는 두 눈으로 광주의 참상을 똑똑히 지켜본 만큼 전두환을 향해 큰 분노를 표시했다.

정 기자는 "군부는 시민이 폭도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두환이 폭도였으며 순한 어린양 같은 시민들을 쏴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두환은 지금 이 시간이라도 국민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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