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역 ‘n번방 2차 가해 방지’ 여성단체 광고 불허 논란
광고 심의하는 마포구청 “일부 문구 민원 소지 있어”
광고 운영권 가진 KT 측, 불허 사유에 ‘성차별적’ 적시
KT가 불허하고 마포구청이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해당 광고. 유니브페미 제공 |
KT가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 2차 가해를 방지하자는 취지의 광고 게시를 불허한 것으로 파악됐다. 광고 관리 당국인 마포구청 측도 광고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여성단체 유니브페미는 지난달 말 ㄱ홍보 대행사를 통해 홍대입구역 앞 버스 정류장 벽면에 광고를 실으려고 했다가 결국 하지 못했다. 해당 광고에는 n번방 2차 가해를 방지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피해자의 신상이나 가해자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글자가 중앙에 크게 배치돼 있다. 아래에는 ‘n번방에 분노한다는 이유로 마녀가 된다면 나는 이미 마녀다. 끝까지 피해자 곁에’라는 글을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공유해달라고 쓰여 있다.
마포구청은 정식 심의 전 ㄱ대행사에 광고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전달했다. ㄱ대행사가 사전 검토를 요청하자 “페미니즘과 관련된 광고가 금지 대상은 아니지만 민원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문구를 순화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일부 문구가 민원 소지가 있다’고 답변했다. 남자든 여자든 n번방 사건에 분노한다. 분노하는 여자를 ‘마녀’라고 하는 건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개인적 의견을 준 거지 정식 심의를 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ㄱ대행사는 유니브페미에 마포구청 의견을 언급하며 “민원이 들어오면 광고를 내릴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해당 장소 광고 운영권을 가진 KT 측(협력업체) 역시 광고 불허를 통보했다고 ㄱ대행사는 전했다. ㄱ대행사 관계자는 “광고를 집행할 때 통상적으로 지자체와 KT 측에 도안을 보내 허가 받는다. 페미니즘 반대 편과 마찰이 생길 여지가 있어 KT가 불허했다”고 말했다. ㄱ대행사는 유니브페미에도 e메일을 보내 “KT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어 광고가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성차별적 내용으로 인권침해 우려’를 문제로 들었다고 했다. 그 근거로 KT 측이 보낸 e메일을 제시했다.
KT 측이 광고대행사에 보낸 메일. 유니브페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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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측이 이달 초 ㄱ대행사 측에 보낸 메일을 보면 “붙임 자료의 금지광고물 등에 해당되는 경우 광고 인허가 불가·광고주와의 마찰이 예상되고 실제로도 발생한다. 해당 광고는 사전 영업을 금지할 수 있도록 영업 파트에 계신 분들께 공지해달라”고 했다.
KT 측이 이와 함께 보낸 자료를 보면 옥외광고물법 제5조 2항 5호의 ‘성차별적’이라는 부분에 형광색 표시가 됐다. 또 ‘여론분열 조장, 인종·성·연령·직업·계층·지역·장애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크게 과장하거나 비방·허위 선전에 해당하는 광고, 인간의 존엄성·생명을 경시하는 광고, 지나친 공포감이나 혐오감을 조성하는 광고’라는 대목이 붉은 글자로 강조됐다.
KT 관계자는 경향신문 문의에 “광고 심의는 지자체가 한다. KT가 광고 심의를 하지 않는다. (본사 담당자가 실무자들에게) 통상적인 지침을 메일로 보낸 것일 뿐”이라며 광고 게시를 불허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유니브페미 측은 “광고는 피해자 신상을 캐고 가해자의 삶을 조명하는 데서 발생하는 2차 피해를 환기하고, 피해자의 곁에서 사건 해결을 촉구하겠다는 약속을 제안하는 내용을 담았다”며 “세 주체가 모두 책임을 미뤄 광고가 실리지 못하게 됐다. 다른 대행사를 찾아 광고를 옥외에 걸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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