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난항에 석유 업체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자산 매각을 서둘렀지만 이조차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잠재적 매수자들도 글로벌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금 보유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엑손모빌, 옥시덴털 페트롤리엄 등 메이저 석유사들이 추진한 자산 매각이 좌절되고 있다. 엑손모빌은 자산 매각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250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최근 20억달러 규모 북해 석유·가스 자산을 매각하기위해 나섰지만 지금은 그 계획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엑손모빌 측은 "자산 인수 의향자를 찾기 힘든 실정"이라며 추진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경기침체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유가 하락 압박이 지속될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옥시덴털도 88억달러 규모 아프리카 자산을 프랑스 토탈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거래에 제동이 걸렸다. 유가 폭락에 따라 자산 인수 대금을 지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은 탓이다. 토탈의 50억달러 규모 자산 매각 계획도 차질이 빚어지면서 옥시덴털 자산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 확보가 차단됐다. 내년 중반까지 150억달러 규모 자산 매각을 추진하려던 BP는 힐콥 에너지와 관련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힐콥이 최근 유가 폭락을 이유로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WSJ는 "에너지 업계가 자산 매각을 통해 재정 강화에 나섰지만, 글로벌 침체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매수자들이 현금 보유에 집중하고 있다"며 "은행들도 거래와 관련된 자금 조달을 축소하고 있어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익성 악화에 자산 매각까지 차질이 발생하면서 돈줄 확보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비라지 보카타리아 RBC 캐피털 마켓 에너지 리서치 부문 헤드는 WSJ에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며 "이 때문에 잠재적인 투자자들이 자산 인수 계획을 철회하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지를 완화할 뜻을 세우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됐지만, 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만큼 수요 공백에 따른 유가 하방 위험이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석유 업계 실적은 예상대로 곤두박질쳤다. 엑손모빌은 1분기 당기순이익이 6억1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엑손모빌이 분기 기준으로 적자를 낸 건 32년 만이다. 이 회사는 올해 예정된 설비투자를 30%를 줄이겠다는 발표했다. BP도 1분기 당기순이익이 43억65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버나드 루니 BP 최고경영자(CEO)는 "석유사업은 수급 양면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쇼크를 겪고 있다"며 "생산량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2분기 경영 여건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열더치셸은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이 2400만달러 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하면서 배당을 전 분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배당을 줄이는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에너지리서치 업체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로열더치셸은 배당 축소로 100억달러를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르웨이 국영석유사 에퀴노르도 시황 악화와 원유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배당을 67% 삭감했다. 로열더치셸과 에퀴노르와 달리 주주자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의 엑손모빌과 셰브런은 배당 지급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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