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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은 주민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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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사찰 흥천사를 서민사찰로 바꾼 금곡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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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 스님은 흥천사 회주로 불리지만, 실제 직책은 불사 총책인 도감이다. 그는 자신을 흥천사의 일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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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경내 산책길. 매일 1천여명이 이용하는 돈암2동의 명소가 되었다. 흥천사에 산책길이 정비되고, 흥천사 경내가 깔끔해지면서 흥천사가 이 동네 사람들의 자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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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30일)을 앞두고 서울 성북구 흥천사길 29(돈암동) 삼각산 흥천사를 찾았다. 지난 24일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10분쯤 걸으니 돈암2동 주민센터 옆으로 흥천사란 표지 옆에 고즈넉한 산책길이 나 있다. 흥천사 경내로 난 산책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신록 사이로 고찰의 전각과 봄꽃이 어우러진 천상의 잔치다. 뒤로는 고층 아파트들이 외호신장처럼 둘러싸 한 폭의 그림에 동서고금이 다 들어 있다. 서울 도심 어디에 이런 보석이 숨어 있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내까지 무허가 집이 난립해 출세간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 오랜만에 이곳을 찾는다면 처음 본 듯한 생경함이 당연하다.

흥천사는 원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정릉에 묻힌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고 온 세상을 흥하게 하겠다는 원력으로 세운 조선의 원찰이다. 조선 초 고승 신미 대사가 머물며 세종의 한글 창제를 도운 곳도 흥천사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 퇴락했던 흥천사는 금곡 스님이 온 8년 전 신자가 단 두 명일 정도로 폐사 위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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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어린이집(오른쪽 한옥)과 왼편 윗쪽은 금곡 스님이 스승인 조실 고 무산 조오현 스님을 모시기 위해 지었던 ’손잡고 오르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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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때 열반한 무산 조오현 스님이 머물던 ’손잡고 오르는 집’. 무산 스님이 2주기는 원래 5월4일이지만, 코로나의 거리두기에 따라 6월3일 설악산 신흥사에서 열기로 했다. 늘 탁발하는 객승들을 내치지않고 여비를 챙겨주던 무산 스님의 추모재엔 전국에서 객승들이 모여들기에 예정대로 추모재를 치를 경우 코로나 감염 위험이 있어 2주기 추모재를 한달 연기했다. 조계종은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회도 5월30일로 한달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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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대웅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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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로 올라가니 오른쪽에 전법회관 불사가 한창이고, 이어 한옥어린이집이 나오고, 이어 맨 위쪽에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쓰인 ‘손잡고 오르는 집’ 편액이 걸린 한옥이 있다. 금곡 스님이 ‘설악산 무애도인’인 조실 무산 조오현 스님을 모시기 위해 이곳에서 가장 먼저 지은 집이다. 깨달음의 빛을 감춘 채 중생 속에 녹아들어가 무애자재하게 어울리며, 특히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던 무산 스님다운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원주인인 무산 스님은 2년 전 이맘때 세연이 다했지만 ‘손잡고 오르는 집’의 정신은 금곡 스님의 흥천사 중창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애초 흥천사 복원이 어려웠던 것은 경내에 들어선 무허가 집 22가구와 60가구의 세입자들까지 80여가구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리’할 방도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산 스님과 금곡 스님은 골칫덩이 이 절을 인수하면서 당시 무허가촌 보상비로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가구당 3억씩을 보상하고, 세입자들도 보증금의 두배를 주어 자발적인 퇴거를 끌어냈다. 그렇게 100억대의 빚을 짊어지고 중창 불사가 시작됐다. 금곡 스님은 맨 처음 인근 마을 주민들을 위해 경내에 멋진 산책길을 내고, 여름이면 얼린 생수까지 비치해두고, 공짜 자판기 커피까지 제공했다. 이어 저소득 외벌이 주민들을 위해 멋들어진 한옥어린이집을 지어 80명의 유치원생을 돌봤다. 그러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면 사고가 경직될 수밖에 없다며 종교교육을 일절 못 하게 했다. 이어 돈암2동 경로당 10곳에 매달 과일과 라면을 들고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1년에 두세차례는 어르신 2천명씩을 모셔 경로잔치를 열었다. 또 절에서 홀몸노인 삼사십 분에게 매일 무료 급식을 제공했다. 하나같이 빚쟁이가 할 법한 일이 아니다.

“교회나 성당을 봐라. 얼마나 마을과 지역민들과 함께하려 애쓰는가. 절은 좋은 기와집과 풍경을 우리끼리만 즐기면 그게 동아리 모임이지 부처님의 대자대비 도량이겠는가. 절을 24시간 개방하고, 언제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찰은 스님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다. 지역민들이 없으면 사찰이 존립할 수 없다.”

그의 역발상은 흥천사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강원도 양양 천년 고찰 낙산사 주지로 부임한 지 보름 만인 2005년 식목일에 양양 지역에 난 산불로 낙산사의 주요 건물이 전소한 큰일을 겪은 당사자다. 그런데 낙산사 복원을 위해 한 푼이 아쉬울 때 그는 낙산사 입장료를 없애고, 점심때는 낙산사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국수와 자판기 커피를 공짜로 대접했다. 그렇게 연간 10만여명이 낙산사에서 무료 국수를 먹었다. 그렇게 낙산사를 동해 제일의 가람으로 복원해내자 오히려 연간 관람객은 140만~150만명으로 4배가량 늘었다. 그는 낙산사 복원 불사의 은혜를 지역민들에게 갚는다며 2007년 양양 시내 2천평에 중풍 치매 노인 보호소인 상락원과 노인복지센터를 열어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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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식목일 강원도 양양 일대 산불로 폐허가 된 낙산사.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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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 낙산사 주지이기도 한 금곡 스님이 낙산사 대웅전에 모신 무산 조오현 스님과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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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 스님이 3000일간의 불사를 통해 폐허에서 동해 제일 가람으로 복원한 강원도 양양 낙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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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대웅전엔 무산 스님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그가 설악산 1200여m 고지 봉정암 암주일 당시인 1993년 기도하러 온 권양숙 여사를 만나며 각별한 인연이 시작됐다. 서민적이고 개혁적인 사고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과 태생적으로 보짱이 맞았다. 보수적인 절 집안의 풍토를 무시하고 노 전 대통령이 1996년 종로에서 총선에 출마했을 때 권 여사의 손을 잡고 종로 일대 사찰 150여 군데를 함께 돌았던 데서 그의 돌쇠 기질을 엿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당일 내려가 권 여사를 달랜 이래 이명박 집권기엔 매달 봉하에 내려가 권 여사를 위로했던 그였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자 노 전 대통령 서거일에만 봉하를 찾고 있다. 그런 인연으로 문 대통령 부부도 흥천사를 몇차례 찾았지만, 문 대통령의 문 자도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에서도 성정이 엿보인다.

그의 혁신적인 마인드는 흥천사 전법회관에도 담겨 있다. 3층 연건평 900평에 법당과 공양실, 북카페 등까지 갖출 전법회관에서 그는 또 한 번의 혁명을 꾀한다. 천도재 한 번에 200만~500만원을 받아 제사 종교로까지 일컬어지는 사찰에서 20만원만 들이면 제사를 모실 현대식 지장전을 꾸미고 있다. 제사로 사찰 재정을 유지하는 스님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지만 그는 “적은 비용으로 편히 부모님을 보내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돕게 우리도 이제 변해야 할 때”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이곳 3층엔 조선 순조 때 조성된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시고, 아픈 이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다. 왕실 사찰이 금곡 스님 덕에 서민 사찰로 거듭나고 있다.

월~목요일은 흥천사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으로 서울에서 보내고, 금토일은 낙산사에서 보내며 휴일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양양의 어려운 노인들에게 줄 것이라며 어렵게 구한 마스크 2천장을 싣고 낙산사로 향한다.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출가를 꿈꿨다는 그는 불모(佛母)인 낙산사의 관세음보살이나 흥천사의 약사여래를 닮아가는 것인가.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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