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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성착취물 실태와 수사

아동성착취물에 3년형? ‘양형기준’ 꼭 따라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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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양형기준이 궁금하다

‘유전무죄·무전유죄’ 비판에 2009년부터 양형기준제 도입

사실상 강제…아동디지털성범죄 내달 양형기준 초안 결정


한겨레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엔번방 사건 이후 SNS에 공유되는 해시태그이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관련 국내법은 외국과 견줘 지나치게 형량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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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 범죄의 법정형은 3년형이 적정하다.’

엔(n)번방 사건으로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겨우 3년형이라니 이게 뭔 말이냐고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양형기준을 만들기 위해 판사 668명을 설문조사했더니 31.6%에 해당하는 211명이 기본양형(가중·감경을 배제한 양형)으로 ‘3년형’을 꼽았다는 겁니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등 범죄의 법정형은 ‘징역 5년 이상~무기징역’입니다. 그런데 판사들의 대부분이 최저 법정형의 절반을 조금 넘는 3년형을 선택했습니다.(▶관련기사: 아동 성착취물 제작, 3년형이 가장 적당하다는 판사들)

반면, 국민들의 생각은 달라보입니다.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이 누리집을 통해 국민 2만23명에게 물어본 결과 상당수 국민들은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이면 형벌이 무거워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합의를 했다’ ‘반성하고 있다’ ‘범행을 자백했다’는 등의 이유로 형을 깎아주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관련기사: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국민과 대법원은 달랐다”)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또 ‘솜방망이’로 만들어지는 걸까요? 국민과 동떨어진 대법원의 양형기준, 꼭 따라야 하는 걸까요? ‘더 친절한 기자들’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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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형기준이 뭔가요?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형을 정함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범죄는 법률에 형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법률에 규정돼 있는 형량을 ‘법정형’이라고 합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1조(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제작·배포 등) 1항을 보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법률을 통해 규정하고 있는 형량이 법정형인 겁니다. 보다시피 법정형은 ‘5년~무기징역’으로 그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동일한 범죄임에도 판사의 판단에 따라 처벌의 강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양형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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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형기준은 어떻게 만드나요?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원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기준을 만들기 위해 양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법원조직법 81조를 보면,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13명의 위원으로 구성하게 되어있습니다. 위원회 위원은 △법관 4명 △법무부장관 추천 검사 2명 △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 변호사 2명 △법학 교수 2명 △학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 2명으로 구성됩니다. 양형기준은 아래 그림과 같은 절차를 거쳐 만들어집니다.

한겨레

자료: 대법원 양형위원회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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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에 양형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20년 4월 현재 살인, 뇌물, 횡령·배임 등 40여개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습니다. 엔번방 사건 이후 그동안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 제작 성범죄자의 최종심 유기징역 평균을 살펴보니, 평균이 징역 3년형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 비판이 일었는데요.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해당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기 위해 ‘양형기준 초안 작성’이라는 1단계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김영란 “n번방 사회적 공분 반영한 새 양형기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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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형기준 꼭 따라야 하나요?


양형기준은 기본양형과 감경양형, 가중양형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특정 범죄에 대해 기본양형을 설정하고, 감경요소가 있는 경우 감경양형으로, 가중요소가 있는 경우 가중양형이 적용됩니다. 감경요소와 가중요소도 정해져 있습니다.(▶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 바로가기)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뇌물수수액이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의 경우 기본양형은 징역 5년~7년이지만, 가중요소에 해당하는 3급 이상의 공무원이거나 업무관련성이 높은 범죄인 경우 양형은 가중돼 징역 6년~8년형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반대로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 감경요소가 있는 경우 양형은 낮아지게 되겠죠.

지금과 같은 형식의 양형기준이 시행된 건 2009년부터입니다. 과거에는 법원 행정처가 양형기준을 제시하긴 했지만, 권고 수준이었으며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아래는 2003년 9월 ‘한겨레’ 기사입니다.



“의원 불체포특권 제한 필요”…대구지검장 박사논문서 주장

현직 검사장이 남용되고 있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법률로 제한하고, 법원의 뇌물사범 처벌 강화를 위해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중략)

그는 또 “2001년 한해 제1심에서 일반 형사범이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33%인 반면, 뇌물죄 등 공무원 직무관련 범죄의 실형률은 16.7%에 불과했다”며 “이런 형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합리적인 양형기준(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형기준을 도입하더라도 법관에게 적정한 재량권을 줘 헌법 위반 소지를 없애야 하나, 기준 적용에는 일정한 강제력이 있어야 하고 이를 거부하는 법관에게는 이유를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1999년 마련한 양형기준의 뇌물죄 관련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고 관대하게 처벌되는 경향이 반복돼, 대법원이 이를 준수하도록 전국 판사들에게 재차 권고했다는 내용도 종종 눈에 뜹니다. 공무원 범죄 등 ‘권력형 범죄’에 관대한 처벌이 계속되면서 당시 국민들 사이에선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그 때문에 합리적 양형의 실현은 사법개혁의 우선 과제로 인식돼 왔고, 2009년 9월부터 현재와 같은 양형기준제가 시행된 겁니다.

한겨레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회의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열렸다.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중이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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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양형기준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걸까요? ‘사실상’ 그렇습니다. 양형기준은 법적구속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법원조직법 81조7항은 ‘법원이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경우에는 판결서에 양형의 이유를 적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 양형기준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관련 국내법은 외국과 견줘 지나치게 형량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은 단순 소지나 시청만해도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공유 등 22건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합계 22년형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습니다.(▶관련기사: 미국, 아동 성착취물 소지만해도 ‘징역 10년’인데 한국은…)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에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할 경우 최고 징역 13년형을 권고하는 안이 보고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본형량은 징역 4년~8년을 다수 의견으로 제시했다고 합니다. 양형위원회는 해당 보고를 바탕으로 다음달 18일 다시 회의를 열어 최종 양형기준안을 정할 방침입니다.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엔번방 사건 이후 SNS에 공유되는 해시태그입니다. 대법원이 판결의 무게를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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