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관망하면서 대안 상품 찾는 여유 필요한 시점"
최근 한 달(3월 21일~ 4월 21일)간 개인투자자들은 상장지수펀드(ETF) KODEX WTI원유선물(H)을 1조2443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1조3044억원, 33억원 순매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3개월 전인 지난 1월에만 해도 2만원(1월 22일 2만235원‧종가 기준)을 넘던 KODEX WTI원유선물(H)은 22일 3960원까지 하락했지만 여전히 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이를 매수했다.
같은 기간 4000원대에서 1400원대까지 가격이 하락한 TIGER 원유선물Enhanced(H)도 기관이 1421억원, 외국인이 50만원을 순매도했지만 개인투자자는 132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사상 처음 마이너스까지 하락하고, 이에 연계된 파생금융상품들의 가격도 줄줄이 하락하자 개인 투자자들이 유가가 반등할 때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뛰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원유 수요가 줄고 산유국들의 감산 규모도 수요 감소에 못 미치기 때문에 당분간 유가 상승을 기대한 무리한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국제유가에 직접 연계된 파생상품 투자보다는 대안이 될 만한 상품을 찾아보는 것도 투자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스크린에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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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원유 파생상품 투자하는 개미들
WTI와 연계된 ETF를 개인 투자자들이 계속 매수하는 것은 "이제 바닥까지 떨어졌는데 언젠가는 오르겠지"하는 심리로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투자자는 "WTI 6월물 가격이 11달러까지 떨어졌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바로 오를 것"이라고 했다.
WTI와 연계된 상장지수증권(ETN)의 가격도 과열되고 있다. WTI 가격이 상승하면 투자이익을 보는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은 22일 650원(종가 기준)에 거래를 마쳤다. 기초지수인 WTI선물 가격의 가치는 유가 급락으로 65원 가량이다.
이 상품의 시장가격이 기초지수가격의 10배(1000%)까지 오른 것은 국내 투자자들이 계속 매수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등 2개 ETN을 23일부터 24일까지 거래 정지하기로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초지수 가치인 국제유가가 계속 낮은 상태에서 상당기간 머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손실이 발생할텐데 투자자들이 불나방같이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WTI 등 주요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5월물이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WTI는 6월물 가격도 크게 하락했다. 21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날보다 배럴당 43.4%(8.86달러) 하락한 11.57달러까지 내려갔다. 배럴당 20달러를 넘던 북해산 브렌트유도 급락하고 있다. 같은 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24% 하락한 배럴당 19.33달러에 거래되며 2002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22일(현지시간)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긴급 비공식 화상컨퍼런스를 개최해 국제 유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했다. OPEC은 5월 10일 추가 감산을 위한 공식 논의를 할 계획이다.
밥 맥널리 래피던 에너지그룹 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수요가 공급보다 2~3배 빠르게 수축되고있다"고 우려했다. 김도현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시나리오별 WTI 투자대안’ 보고서에서 "많이 하락했으니 어떻게 되겠지라는 기대로 국제유가 상승에 몰빵 투자를 한다면 이는 비논리적 투기"라고 지적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2일 화상컨퍼런스를 개최해 최근 가격이 급락한 국제유가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 OPEC 공식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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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정유기업 연계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대안"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유가 상승을 바라고 투자하는 것은 손실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다. 또 WTI 등 원유 선물에 직접 연계된 ETF·ETN 등 파생상품보다는 글로벌 정유사의 주식을 기초지수로 하는 상품으로 투자 시야를 넓혀보라고 조언한다.
신동일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50~60달러까지 가던 국제유가가 10달러대로 하락했지만 미국 등 주요국이 코로나19로 소비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가 지지부진해 원유 공급은 계속 수요보다 높아 저유가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는 "이럴 때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기보다는 국제 유가가 40달러선으로 회복될 때까지 관망하며 여유자금을 확보한 후 유가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 투자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국제 유가에 직접 연계된 ETF보다 글로벌 정유사 주식에 연계된 ETF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예를 들어 TIGER 글로벌자원생산기업(합성 H), KBSTAR 미국S&P원유생산기업(합성 H) 등은 국제유가 선물가격에 연계된 상품이 아니고 글로벌 정유기업 등 유가와 관련된 기업의 주식을 지수화한 후 이 지수에 연계해 놓은 상품이다. 이들 상품은 통상 유가가 오르면 함께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식이 기초지수를 구성하기 때문에 선물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비용을 들여 기초자산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
원유에 연계된 ETF 등 파생상품은 현물인 원유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선물가격에 연계해서 거래한다. 예를 들어 5월물 WTI를 기초지수로 하는 ETF는 5월물 만기가 다가오면 이를 6월물 WTI로 변경하는 작업(롤오버)을 하는데, 이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투자자가 부담하는 구조다. 국제유가 자체의 가격변동이 심해 손실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인데 기초지수를 변경하는 부대비용까지 투자자가 부담해야하는 셈이다.
김승현 미래에셋자산운용 ETF마케팅본부 팀장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상품에는 원유나 자원생산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기업들의 주식을 지수로 만든 파생상품이 있다"며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지수의 변동폭 만큼만 이익과 손실을 보기 때문에 유가와 연계된 파생상품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정해용 기자(jhy@chosunbiz.com);박정엽 기자(parkjeongyeo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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