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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코로나발 글로벌 위기-유가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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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가 일자리를 위협하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제유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이동 수요가 줄어든 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까지 급락했다. 보다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유가 하락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압박하면서 잠시 반등했지만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국제유가가 요동치면서 정유, 조선, 건설 등 국내 주요 산업도 직격탄을 맞는 모습이다. 이 와중에 원유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 가격이 널뛰기를 하면서 ‘유(油)테크’에 나서는 투자자도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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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러시아 ‘치킨게임’에 롤러코스터

트럼프 압박에도 유가 안정될진 미지수


“올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 브렌트유가 사상 최저인 배럴당 10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던 1998년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리스타트에너지)

“2분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5달러로 추락할지 모른다.” (씨티그룹)

글로벌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국제유가 바닥은 어디일까. 배럴당 20달러가 붕괴되고 머지않아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라는 표현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지난 3월 18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6.58달러 급락한 20.37달러에 장을 마쳤다. 런던ICE선물거래소 5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3.58달러 내린 24.88달러로 2003년 5월 8일 이후 최저가를 기록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배럴당 6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가 사실상 반 토막 난 셈이다. 최근에는 장중 배럴당 20달러 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지난 3월 30일 오전 5월물 WTI가 장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7.4% 떨어진 배럴당 19.92달러에 거래됐다. WTI가 배럴당 20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2년 2월 이후 18년 만이다. 4월 들어 반짝 오르기는 했지만 배럴당 20달러 선에서 횡보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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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요동치면서 정유, 조선, 건설 등 국내 주요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사진은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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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미국에서는 ‘마이너스 유가’ 현상까지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와이오밍산 아스팔트용 석유는 최근 배럴당 마이너스 19센트에 낙찰됐다. 주로 도로 포장용으로 사용되는 저품질 상품이지만 이를 감안해도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이례적이다. 재고가 넘치면서 차라리 돈을 주고서라도 재고를 줄이는 편이 낫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가 연일 하락하는 배경은 뭘까. 코로나19 사태가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주면서 원유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계 3대 석유 소비국으로 인구가 13억명에 달하는 인도가 전 국민 이동 금지령을 발효해 석유 수요가 급감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코로나19 충격으로 전 세계 원유 수요는 최대 25% 줄었다. 하루 원유 수요 규모가 1억배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하루 최대 2500만배럴 수요가 감소했다는 의미다. 이는 전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하루 산유량과 맞먹을 정도다.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줄면서 전 세계 원유 저장 능력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리스타트에너지에 따르면 캐나다는 머지않아 석유 저장 공간이 부족해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중국 주요 정유사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문을 닫은 이후 세계 원유 저장 수준이 최대치 대비 평균 4분의 3 수준까지 높아졌다.

원유 저장 능력 부족 문제는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올 2분기 세계 석유시장에서 하루 평균 500만배럴 이상의 공급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경하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전 세계 원유·정유 제품 저장 능력은 약 78억배럴로 이미 가동률이 76%에 달한다.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약세가 장기화되면 향후 9개월 내 저장설비가 가득 찰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갈등이 커진 것도 국제유가 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플러스(+)’ 회의가 유가전쟁 발단이었다. OPEC+는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모여 만든 협의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사우디를 중심으로 석유 생산을 줄이는 방안이 회의에서 논의됐다. 하지만 사우디가 주도한 감산안에 러시아가 반기를 들었고 합의는 무산됐다. 파벨 소로킨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은 “지금의 저유가가 러시아에 재앙적인 유가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사우디는 “4월부터 하루 평균 970만~1000만배럴 수준인 원유 생산량을 1230만배럴까지 늘리겠다”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나섰다. 러시아도 덩달아 증산 경쟁에 나서면서 국제유가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누가 저유가를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이른바 ‘치킨게임’에 돌입한 양상이다.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을 견제해 전 세계 석유시장 패권을 잡기 위해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은 2018년 기준 세계 석유 생산량의 16.2%를 차지하는 세계 1위 산유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13%), 러시아(12.1%)가 뒤를 잇는다.

부랴부랴 미국이 나섰지만 갈등이 무마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트위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한 내 친구 MBS(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방금 통화했다. 그들이 약 100만배럴을 감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희망한다. (감산 규모가) 1500만배럴이 될 수도 있다”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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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저장 능력 부족 심각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1000만~1500만배럴 감산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하루 평균 감산량이 1000만배럴이라고 가정하면 전 세계 원유 하루 생산량의 10% 정도로 큰 규모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을 줄이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만약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셰일가스 감산을 선언하면 핵심 지지 세력인 미국 석유업계가 반발할 우려가 크다.

그나마 ‘OPEC플러스(+)’가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원유 감산 방안을 논의했지만 멕시코 반대 등으로 옥신각신하면서 합의가 미뤄지기도 했다. 미국이 감산에 동참할지 여부도 변수다. 특히 러시아가 감산을 거부해온 것은 미국 셰일가스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표면적으로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싸우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셰일가스 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봐야 한다. 러시아가 더 격렬하게 전투에 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국제유가 급락으로 미국 셰일가스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셰일가스 업계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소 40달러 이상 유지돼야 채산성을 갖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가 하락으로 미국 셰일가스 업체 중 70%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일례로 셰일가스를 채굴·생산하는 화이팅페트롤리엄은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최근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이들 셰일오일 업체가 갚아야 할 부채만 860억달러(약 107조원)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국제유가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하더라도 국제유가 하락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우려다. CNN은 “국제유가 하락의 근본적인 이유는 사우디·러시아 간 유가전쟁에 따른 과잉 공급이 아니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요 감소”라고 분석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대 산유국 간 치킨게임은 서로 상처를 줘 결국 감산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세계 경제위기로 원유 수요가 급감해 감산 효과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저유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민·노승욱·류지민·나건웅·반진욱·박지영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4호 (2020.04.15~04.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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