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5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美바이어 주문취소 '갑질'에 우는 한국의 '을'…패션공급망 붕괴 위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美 콜스 등 바이어 지불 거부에 韓 의류벤더 지급 불능...개도국 노동자 생존권 위협 ]

머니투데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주요 패션 브랜드 바이어들


미국 코로나19(COVID-19) 확산으로 갭, 월마트, 콜스 등 글로벌 패션 빅 바이어의 주문 취소가 잇따르며 글로벌 패션·섬유 공급망의 중간축을 담당하는 한국의 의류벤더(Garment Vendor)들이 위기에 처했다.

세아상역·한세실업·한솔섬유로 대표되는 의류ODM(제조자 개발생산 방식) 업체는 한국수출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코로나19로 인한 미국 바이어의 지불 거절 충격이 한국 벤더를 거쳐 개발도상국의 방직·봉제 공장까지 이어지며 글로벌 패션산업의 공급망 붕괴가 현실화됐다.

◇美 바이어 갑질에 샌드위치된 세아·한세·한솔=지난달 미국 백화점 콜스(Kohl's)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백화점이 영업을 중지하자 국내 의류벤더 빅3(세아·한세·한솔)에 3~6월 주문에 대한 취소를 통보했다. 콜스의 주문 취소 규모는 세아상역 약 5000만달러, 한솔섬유 3800만달러 등으로 3사를 합쳐 1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월마트, 콜스, 타겟 등 미국의 주요 바이어들은 3월 20일부터 매장을 닫았다. 영업 중지로 한 달 매출이 사라진 바이어들은 업체별로 결제 연기를 요청한 곳도 있으나 일부는 주문을 취소했다. 주문을 취소한 바이어 중에는 원가를 지급하겠다는 곳도 있지만 선적하지 않은 물건에 대해선 대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한 곳도 있다. 콜스가 대표적이다.

국내 벤더사들은 이미 원단·봉제·부자재 비용의 95%를 지출한 상태다. 조만간 가을 의류를 만들기 위한 현금도 필요하지만 콜스의 지불 거부로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은 상태에서 가을 옷도 만들기 어렵게 됐다.

국내 의류벤더 빅4로 꼽히는 세아·한세·한솔과 영원무역은 유보현금이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신성·태평양·지지·풍인 등은 평소에도 부채비율이 높은 곳이다. 최근 직원 55명을 내보낸 것으로 알려진 신성통상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인도네시아 사업부는 아예 접었다.

S사 관계자는 "과거에 바이어가 파산한 적도 있지만 모든 바이어가 동시에 주문을 취소하면서 매출이 증발하고 현금흐름이 막힌 적은 처음"이라며 "원단과 부자재 업체들이 돈을 달라고 압박하는데 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PayUP, 美 바이어 "돈을 내라"=미국 바이어의 주문 취소는 한국 의류벤더를 넘어 개발도상국에 있는 수 만 명의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섬유는 노동집약적 산업이기에 글로벌 패션의류 생산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타고 미국의 위기가 개발도상국까지 전염된 것이다.

머니투데이

개발도상국의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손/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아·한세·한솔은 원단은 주로 중국, 베트남에서 소싱하며 봉제 공장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아이티, 방글라데시 등에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하루 벌어 먹고사는데 이들의 임금 체불과 공장 셧다운이 발생한 상태다.

개도국 노동자들의 생존 문제가 불거지자 국제 패션 NGO(비정부기구) 리메이크(Remake)는 월마트, 타켓, 자라 등을 대상으로 #PayUp(돈을 내라) 청원을 시작했다. 리메이크 측은 글로벌 패션브랜드가 공급망의 파트너와 노동자를 포기하지 말고 대금을 지불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PayUp 운동이 불거지자 리바이스, 타겟, 아마존, H&M은 100% 대금 지불을 약속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급 시점은 여전히 미정이다.

H사 관계자는 "국내 의류벤더들에 자금 지원을 해주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미국·유럽의 빅 바이어들이 돈을 낼 수 있도록 국제 사회가 협조하는 것"이라며 "지금 바이어들이 보이는 행태는 공정 거래가 아니다"고 호소했다.

세아상역·한솔섬유가 콜스에 의류를 공급하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개도국 봉제공장 노동자 수는 9만7000명에 이른다. 대금 지급을 거절한 다른 바이어와 프린트·염색 노동자까지 합하면 수 십 만 명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오정은 기자 agentlittle@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