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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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 공무원 연수원 수업 도중 다른 연수생의 뒷모습을 촬영해 퇴학 처분을 당한 A씨가 이를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A씨가 고의로 피해자의 신체를 사진을 찍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지난해 5월 공무원 채용후보자들이 입소한 지 며칠 만에 발생했다. 조별 활동 수업 중 교육생 A씨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상체를 뒤로 젖힌 채 손을 가슴 앞에 밀착해 사진을 찍었다. A씨는 사진을 찍은 뒤 "왜 흐리게 나오지"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휴대전화 화면이 보이는 방향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았고, 몇몇 사람들이 A씨가 사진을 찍었다는 걸 알아챘다. 마침 A씨 자리 앞에 위치한 조에는 무릎길이 정도의 원피스에 흰색 레깅스를 입은 다른 연수원생 B씨가 있었다.
그날 오후 목격자들이 B씨에게 A씨의 촬영 사실을 알렸고, 인재개발원 차원에서 사실 관계를 조사하게 됐다. A씨가 찍은 두 장의 사진은 B씨가 허리를 굽혀 레깅스를 착용한 허벅지가 보이는 모습이 사진 구도의 중앙에 놓인 사진과 B씨가 허리를 일으켜 세운 뒷모습 두 장이었다. 공무원인재개발원은 윤리위원회 개최 등 절차를 통해 A씨에게 퇴학 처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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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우연히 찍힌 모습, 고의 아냐"
A씨는 "피해자 신체를 촬영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별 수업 도중 같은 조원들의 모습을 찍어 공유하려는 의도였고, 피해자 신체는 우연히 찍힌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촬영된 사진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만한 타인의 신체를 찍은 사진'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진 촬영 시 문제의 소지가 없을 만큼 신중해야 할 주의 의무를 위반한 가벼운 과실은 있을지라도 교육생의 품위를 크게 손상할 행위는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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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입은 뒷모습’ 법원 판단은
A씨가 찍은 사진 자체에 대한 법원 판단은 A씨 주장과 달랐다. 법원은 이 사진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신체 부위를 촬영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찍은 신체 부위는 B가 드러나기를 원치 않아 별도의 레깅스를 입기까지 한 부분”이라고 명확히 했다. 이어 레깅스 착용을 선택하는 것과 그 착용 모습이 타인에게 사진으로 찍히는 경우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도 짚었다. 재판부는 “B씨가 활동의 편의를 위해 스스로 레깅스를 입었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해당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넘어 사진의 형태로 고정돼 촬영되는 것까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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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사정 있지만…반대 사정도
법원은 사진 구도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A씨는 "같은 조 조원을 찍으면서 앞 조에 있는 B씨의 뒷모습이 찍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일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진에 찍힌 다른 조원들은 아무리 봐도 단순한 주변 인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진 구도"라고 판단했다. A씨의 촬영 의도를 의심할만한 사정이 있다는 취지다. 덧붙여 법원은 “A씨가 B씨를 촬영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최소한 이 사진처럼 부적절한 사진이 촬영되지 않도록 할 주의 의무가 있었음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A씨가 이런 사진을 고의로 찍었다고 명확히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심스러운 사정은 있지만 A씨 주장대로 주변 조원들을 찍으며 우연히 B씨가 찍혔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결문에 썼다.
앞서 공무원 인재개발원장은 퇴학 처분과 별도로 수사기관에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로 A씨를 고발했다. 이 건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A씨가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점과 더불어 A씨가 공개적으로 사진을 찍은 점을 고려했다. 일반적으로 몰래카메라 범행은 다른 사람이 모르게 찍기 마련인데, A씨는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A씨가 사진을 찍은 뒤 스스로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는 취지의 혼잣말을 한 것도 근거로 봤다. 촬영 사실을 주변에 알린 점은 범행 의도를 가진 사람의 모습은 아니라는 취지다. A씨가 당시 무음 촬영이 지원되는 카메라 보정·촬영 앱을 사용했지만, 이 사건 때만 아니라 평소에도 A씨가 이 앱을 사용해왔다는 점도 고려됐다.
법원은 "고의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를 촬영하는 것과 부적절한 사진이 촬영될 수 있음을 인식했음에도 주의 의무에 반해 사진을 찍은 것은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 씨에 대한 퇴학 처분은 그 사유에 사실관계에 대한 오인이 있으므로 취소하는 것이 옳다고 판결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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