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등 행사 취소·연기 잇따라
세계대전 때도 없었던 ‘미증유’ 사태
온라인 거래는 활기 ‘변화의 바람’
“위기 대비 온라인 시스템 구축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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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래 우리는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선 비상 의료대책이 중요하지만, 정부는 그에 못지않게 미술관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들 가운데 하나인 영국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의 하르트비히 피셔 관장은 지난주 세계 박물관·미술관 관계자들 앞으로 비장한 어조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미술관·박물관 ‘올스톱 사태’를 맞아 각 나라 미술관의 공동협력과 연대를 통한 자구책과 정부 차원의 지원을 호소한 것이다.
코로나 유행과 관련해 세계 미술계가 입은 타격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전시, 감상, 거래와 관련된 미술관·화랑 등과 경매, 아트페어(장터) 같은 행사들은 다수의 관객을 특정한 공간에 끌어모은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집중적인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기본적인 전시는 물론, 각종 시설 운영과 거래 시장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1·2차 세계대전 때도 없었던 미증유의 사태다.
코로나19가 처음 동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퍼질 무렵인 1~2월엔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권 미술관의 휴관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유럽과 미국에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이달 초 바티칸, 우피치 뮤지엄을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의 미술관이 문을 닫은 것을 시작으로 13일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무기한 휴관을 선언했고, 17~20일엔 영국의 테이트모던과 브리티시 뮤지엄 등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미국도 12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문을 닫은 뒤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와 로스앤젤레스의 라크마와 게티 등 서부와 동부의 주요 미술관이 기한 없는 폐쇄 상태에 들어갔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뉴욕타임즈> 등 현지 언론에 “7월까지 휴관이 장기화할 경우 1억달러 이상의 운영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등 미국의 일부 미술관들은 운영이 중단되자 당장 시간제 임시직원들의 해고에 나서 관련 직종의 고용불안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 미술 잔치인 비엔날레와 아트 페어로 대표되는 미술시장은 행사 취소와 연기가 잇따르면서 사실상 휴면 상태에 빠졌다. 50년 역사를 지닌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품 국제 장터인 스위스의 아트바젤은 6월로 예정했던 행사를 9월로 미룬다고 26일 발표했다. 앞서 아시아 최대의 미술 장터인 홍콩아트바젤도 이달 치르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다른 명문 아트페어인 런던과 뉴욕의 프리즈 행사도 취소됐고 밀라노 디자인박람회는 연기됐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굴지의 옛 가구와 골동품 컬렉션 아트페어 ‘테파프’는 이달 7일 개막 직후 확진자가 나와 조기 폐막했다. 비엔날레의 경우,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제를 비롯해 상파울루, 시드니, 다카르 등 세계 여러 도시 행사들이 줄줄이 연기됐다. 미술 장르는 서구 중심의 거대 시장과 미술관·비엔날레를 배경으로 한 담론, 작품 발굴 마당으로 나뉘어 굴러가는 문화생태계다. 이 생태계가 전면적으로 숨을 죽인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장기적으로 큰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술평론가인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는 “주기적인 위기 상황에 대비할 미술품 거래와 전시 온라인 백업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회화·조각 같은 물량적 작품에 대한 선호가 커지는 취향의 보수화 현상이 함께 일어나리라 본다”고 예측했다. 당장 국제 미술 시장에서는 온라인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올해 행사가 취소된 홍콩 아트바젤의 경우 참여 화랑들이 출품작을 온라인에 내보이고 거래하는 ‘뷰잉룸’ 서비스를 18~25일 선보였는데, 100만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서구 대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팔리고 접속자가 몰려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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