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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공감세상] 이상한 믿음 /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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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승훈 ㅣ 종교학자

재난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바꾸어 놓고, 수면 아래 있던 문제들을 떠오르게 한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이라는 교단은 기독교계 내에서야 첨예한 화젯거리였지만, 사회 일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 비밀스럽고 공격적인 선교 방식은 기성 교단들의 분노를 자아내 왔지만, 그 자체로는 ‘사회문제’가 아니었다. 신천지 집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된 매개가 되고, 불완전한 정보 공개로 사태가 악화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남의 교회에 침투해 신자들을 빼가고, 젊은 신자들이 가출해 임대 아파트에 모여 살며, 이른바 ‘박근혜 시계’를 차고 텔레비전에 나와 힘겹게 큰절을 하는 노인을 지도자로 섬기는 이 교단을 의혹과 적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최근 왜 사람들이 그런 이상한 종교를 믿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이 질문이 이상하다. 회의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신천지 같은 이상한 종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종교는 모두 이상하다. 남의 종교는 더욱 이상하다. 그리스도교가 처음 생겼을 때, 사람들은 치욕스러운 형벌 도구인 십자가를 걸어놓고 ‘살’과 ‘피’를 나눠 먹는다는 새로운 종교를 극히 수상하게 여겼다. 인도를 방문한 이방인들은 강의 상류에서는 시체를 불태워 흘려보내고, 하류에서는 그 물을 마시며 경건하게 목욕하는 사람들을 경악하며 바라보았다.

근대 이후 종교 연구자들은 왜 사람들이 과학의 시대 이후에도 여전히 종교 같은 이상한 것을 믿고 있는지를 물어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상한 믿음은 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안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도 믿지만,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국가나 민족 같은 것도 믿으며 전쟁까지 일으킨다.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경제활동도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조그맣고 동그란 금속 조각이나 손바닥만 한 종잇조각, 심지어 플라스틱 카드에 등록된 디지털 신호 같은 것의 가치를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통치자의 정당성을 믿지 않게 되면, 그는 대통령이 아니라 수감자가 된다. 결코 인정하기 쉬운 진실은 아니지만, 인간 사회, 우리의 삶은 상상된 허구에 대한 믿음으로 유지된다. 신이나 의례와 관련된 전통적인 신앙들을 버린다 해도 우리는 이상한 믿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무신론자들도 광신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종교 리터러시(religious literacy)다. 비판적 능력을 갈고닦으면 종교의 이름을 건 사기, 나아가 가짜뉴스나 상징조작, 악의적인 정치선동, 유사과학 등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 가능하게 하려면 자기 머리로 믿음을 평가하고 선택할 수 있는 훈련, 즉 종교에 대한 공공교육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두 가지 의미에서 종교 문맹국이다. 우리에게는 종교를 다루기 위한 공적 담론이나 언어가 결여되어 있다. 자신과 다른 정치적,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는 언어만이 넘치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 교육은 개별 종교집단의 교리 교육에 한정되어 있다. 오강남이 풍자적으로 쓴 바 있듯이,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수준의 호교론만으로는 “다른 아빠”의 자식들과 진지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왜 한국 개신교 환경에서 신천지와 같은 형태의 신종교가 출현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신천지의 이만희는 다른 기독교계 신종교의 ‘교주’들에 비하면 치유 능력과 같은 스스로의 초월적 카리스마를 덜 강조하는 편에 속한다. 대신 그는 ‘말씀’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해석해 주는 능력을 내세운다. 오랜 기간 한국 기독교를 지배해온 근본주의 신학은 교리를 문자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믿을 것을 요구해 왔다. 신천지는 종교적 사고를 ‘외주화’하라는 이런 요구를 파고들어, 의심할 필요 없는 정확한 말씀을 제시해 주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신천지에 빠지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인다면, ‘종교 문맹’을 양산해온 구조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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