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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은 2016년 1월12일 작성됐습니다>
지난 12월 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위험한 초대남-소라넷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편을 방송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음란물 공유사이트인 ‘소라넷’에 대한 내용이었다.
소라넷은 1999년 개설되어 각종 포르노 이미지는 물론 몰래카메라(몰카)와 더불어서 성범죄 정보가 공유되는 불법사이트다. 회원수는 자그마치 100만명. 울산광역시 인구수와 맞먹는다. 적지 않은 숫자가 소라넷에서 유통되는 ‘타인에 대한 폭력’을 별 문제의식 없이 즐기고 있었다는 말이다.
‘위험한 초대남’ 방송 후 인터넷 게시판 댓글 등을 통해 많은 남성들이 보였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조심해야 한다, 남자들의 본능이다, 소라넷을 문제 삼는 여자들의 방식이 더 문제다” 등. 이처럼 우리는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범죄가 왜 범죄인가를 설득하는 것 자체가 고된 일인 세상을 산다.
“얼굴 노출도 안 된 상태인데 피해가 큰가요?” 야노는 천진하게 말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를 ‘골뱅이(술이나 약물 등에 의해 인사불성이 된 여성을 일컫는 은어)’로 만들어 숙박업소에 데려다 놓고 그 위치를 소라넷의 다른 남성들과 공유한 뒤 ‘돌려가며 강간’했다고 증언했다. 명백한 성범죄다. 소라넷을 모니터링하는 단체에 따르면 이런 강간 모의는 하루에 적어도 2~3건씩 올라온다.
소라넷의 다른 사용자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설명한다. 그곳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하는 범죄행각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시된다는 것이다.
센 걸 던질수록 더 많은 관심을 끌고, 더 큰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니 경쟁이 붙고 수위가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경쟁은 결국엔 여성 나체사진이나 몰카와 같은 여성 이미지의 교환을 넘어 실제로 여성을 돌려가며 성폭행하는 여성 육체에 대한 교환으로 확대된다. “안 보셨어요? 헬스장 사진? 되게 유명했던 사진인데?” 소라넷에 올려 화제를 불러모았던 자신의 ‘작품(몰카 게시물)’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야노’의 의기양양함은 이 때문이다. ‘제어할 수 없는 성욕’이나 ‘본능’, ‘성적 취향’이 아니라, 이 의기양양함이 소라넷의 본질이다.
소라넷에서의 여성 이미지·여성 육체의 교환은 인맥, 정보, 충성, 뒤봐주기, 현금 등의 ‘선물’ 교환을 통해 관계를 조직하고 그 관계 안에서 위계를 형성해 가는 남성 사회의 인터넷판인지도 모른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들이 주고받는 가장 흔하지만 가장 중요한 ‘선물’로 취급되어 왔다.
이처럼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자 전리품이라는 생각, 그렇게 여자를 남성 동지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를 실망시켰을 땐 어떤 식으로든 보복당해도 싸다는 멸시의 마음. 사회적으로 공유되어 있는 이런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소라넷은 존재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 소라넷 운영진은 이런 뒤틀린 남성연대에 기생해서 돈을 번다. 소라넷의 베스트 작가들은 여성을 성기로 치환하는 포르노적 이미지를 게시함으로써 회원수를 늘리고, 일반 회원들은 그 이미지와 더불어 광고를 소비함으로써 소라넷에 돈을 벌어준다. 자본과 남성 간의 공모가 소라넷이라는 불법사이트를 만들어 낸다.
소라넷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멸시와 혐오가 어떻게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불법적인 음란물이 좌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농담이나 취향, 유희가 아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침해이자 폭력이며, 인간 존엄의 훼손이고, 범죄다. 그리고 외면과 침묵, 혹은 무관심을 가장한 방조가 이런 폭력과 범죄의 구조를 지속시킨다.
단속 시작 2주 만에 소라넷 내부에서 활동하던 1000여개의 카페를 폐쇄시켰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대한민국 경찰은 소라넷이 번창해 온 그 16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강간 모의를 고발하고 소라넷 폐지 청원을 하는 등 여성들이 움직이고 진선미 의원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다면, 소라넷 문제는 여전히 남성들의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공공연하게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는 소라넷만의 문제도 아니다. 괴물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기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남성 중심적 구조 자체가 괴물이다. 괴물은 침묵을 먹고 자란다. 그러므로 이제 남성들의 차례다.
“소라넷은 소수만의 문제이며, 남성 전체의 문제라고 말하는 건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라고 물러나 있을 것이 아니라 괴물을 키우는 ‘침묵과 암묵적 동조’라는 일상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이 지겹도록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를 함께 끝내자.
<이 글의 원문은 2016년 1월12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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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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